도쿄·서일본신문 기자, 본보 계엄 호외 호평 “역시 광주”
2024년 12월 12일(목) 20:10 가가
본사 편집국 찾아 제작과정 취재
80년 5·18 삭제·검열 기사 관심
80년 5·18 삭제·검열 기사 관심


서일본신문 이진우(왼쪽 두번째부터 시계 방향으로)·히라야마 나루미 기자, 도쿄신문 우에노 미키히코 서울지국장이 12일 광주일보사를 방문해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 신문을 보면서 최권일 광주일보 편집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일본 신문 취재진이 호외제작과 집중보도를 통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광주일보사를 방문 취재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기인 1980년 5월 20일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제출과 이번 호외(비상계엄에 민주주의 멈췄다) 제작을 ‘신문의 존재 가치와 기자정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서일본신문(니시닛폰신문) 이진우·히라야마 나루미 기자, 도쿄신문 우에노 미키히코 서울지국장은 12일 광주일보사 편집국을 방문해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호외 제작까지의 과정 등을 취재했다.
이들은 1980년 비상계엄 확대로 촉발된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한 광주일보의 역사를 주목했다. 계엄군의 혹독한 언론통제기에 발행한 1980년 5~6월 광주일보사의 기사를 보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일본 기자들은 특히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와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삭제·검열된 기사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사태에서 호외 발행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당시 긴박했던 상황 등을 들은 일본 기자들은 “역시 광주”라며 칭찬했다.
우에노 미키히코 지국장은 “광주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대하는 느낌은 서울과 다른 것 같다”며 “‘내일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서 호외를 만든 판단도 현명했다. ‘역시 광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우에노 지국장은 “이번 사태는 확실히 역사에 남겨야 하는 일이고, 신문사는 당연히 역할을 해야 했다”며 “광주일보에서 호외를 발행해 같은 신문 기자로서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도 “광주일보 호외를 보고 ‘5·18 당시 계엄령 선포를 직접 겪으신 광주 분들은 서울시민과 온도 차가 크겠다’는 생각에 광주를 찾아 취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히라야마 나루미 기자는 “지난 7일 여의도로 집회 취재를 갔을 때 젊은 청년들이 ‘정말 군이 들이닥친 줄 알고 무서웠다’는 얘기를 했는데 솔직히 일본인 기자로서 ‘정말 그렇게 느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광주일보가 호외를 내는 움직임과 과정을 보고 한국인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어떻게 느꼈을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디어의 발전으로 신문의 위상이 낮아졌고, ‘호외’가 잊혀져 가고 있던 상황에 광주일보 호외는 ‘신문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극찬했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기인 1980년 5월 20일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제출과 이번 호외(비상계엄에 민주주의 멈췄다) 제작을 ‘신문의 존재 가치와 기자정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1980년 비상계엄 확대로 촉발된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한 광주일보의 역사를 주목했다. 계엄군의 혹독한 언론통제기에 발행한 1980년 5~6월 광주일보사의 기사를 보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호외 발행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당시 긴박했던 상황 등을 들은 일본 기자들은 “역시 광주”라며 칭찬했다.
우에노 지국장은 “이번 사태는 확실히 역사에 남겨야 하는 일이고, 신문사는 당연히 역할을 해야 했다”며 “광주일보에서 호외를 발행해 같은 신문 기자로서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도 “광주일보 호외를 보고 ‘5·18 당시 계엄령 선포를 직접 겪으신 광주 분들은 서울시민과 온도 차가 크겠다’는 생각에 광주를 찾아 취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히라야마 나루미 기자는 “지난 7일 여의도로 집회 취재를 갔을 때 젊은 청년들이 ‘정말 군이 들이닥친 줄 알고 무서웠다’는 얘기를 했는데 솔직히 일본인 기자로서 ‘정말 그렇게 느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광주일보가 호외를 내는 움직임과 과정을 보고 한국인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어떻게 느꼈을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디어의 발전으로 신문의 위상이 낮아졌고, ‘호외’가 잊혀져 가고 있던 상황에 광주일보 호외는 ‘신문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극찬했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