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구본창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12월 12일(목) 00:00
전시회를 다녀와서 내 곁의 ‘물건들’에 눈길을 주게 됐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하찮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을 접한 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구본창 사진작가의 ‘사물의 초상’전은 다시 관람하고 싶은 전시다. ‘청화 백자’시리즈가 가장 좋았는데 백자, 꼭두, 탈, 금관 연작 등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어린 시절, 외톨이로 지내다 보니 말을 못하는 것들과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는 작가가 앵글에 담은 ‘사물’은 다양하다. 수백 번의 손길이 스쳐 가 닳고 닳은 각양각색의 ‘비누’ 연작과 한 때는 물건이 담겼을 빈 상자의 흔적을 찍은 ‘오브제’ 연작은 “인간과 사물이 얽혀서 역사를 만든다”는 말을 좋아하는 그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전시 관람 전 포스터에 실린 ‘붉은 컵’의 존재가 궁금했다. 유명 작가의 대규모 전시를 알리는 메인 포스터에 담긴 작품이라면 뭔가 ‘대단한 것’이라는 선입견은 전시장에서 단번에 깨졌다. 함께 전시된 그 ‘컵’의 실물을 접하면,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사물’에 대한 생각은 한강 작가의 ‘소장품 기증 행사’에서 한 번 더 하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개개인에게 의미 있는 물건을 노벨박물관에 기증하는 전통이 있는데, 한 작가는 집필할 때의 일상이 담긴 작은 찻잔을 전달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집 근처 천변을 하루 한번 걷는 루틴을 지키려 했던 그는 차를 마시며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적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됐던 당시 이희호 여사가 보낸 손편지와 털신, 죄수복 등을 기증했었다.

구 작가는 “굉장히 외롭거나 쓸쓸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는 듯 하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작가의 따스한 시선으로 생명을 얻은 사물들에 자신을 감정이입 했을지도 모른다. 당신 곁에는 어떤 물건이 있나요? 그 물건은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나요? 한번쯤 귀 기울여 들어볼 일이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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