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닫힌 방에 있다고 할지라도- 심 옥 숙 인문지행 대표
2024년 12월 02일(월) 00:00
확실히 타인은 부담스럽고 의심스러우며 자주 공격적이어서 알 수 없고 불편한 존재다. 갑자기 평소와 다른 모습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동시에 우리는 매일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며 대화하고 마음을 내보이며 이해받고 인정받으려고 애를 쓴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안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에 연연하며 때로는 그 기대에 맞춰서 마음에 없는 행동도 한다.

세상에서 존재하기에는 두 방식이 있다고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한다. 그는 즉자와 대자로 구분한다. 즉자는 그냥 그 자체로 있는 사물의 방식이다. 즉자는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의식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책상 위에 놓인 화병은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인지, 어떤 꽃이 꽂히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생각도 의식도 없다. 이런 즉자적 존재는 꼭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의 의미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잉여적 존재이다.

반면에 대자 존재는 자신에 대해서 의식하는 존재다. 대자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극복하려 애를 쓴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묻고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면서 누구나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것의 증표다.

때때로 사람은 불안을 회피하고 힘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즉자적인 방식의 삶을 택한다. 즉자적 삶은 타인과의 관계를 쓸모없는 것으로 보며, 세상에서 오직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부정하는 태도다. 관계의 방식을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정하며, 오직 자신만 판단과 결정에 대한 유일한 주체라고 믿는다. 대자 존재인 사람도 주변 사람들과 상호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 산다면 사물과 같은 즉자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대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과거보다는, 지금, 여기의 현재를 충만하게 산다.

1943년에 사르트르가 발표한 희곡 ‘닫힌 방’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세 사람의 이야기다. 이미 한번 죽은 세 명은 한 방에 갇혀서, 언제 상황이 끝날지 모른 채 있다. 이 상황에서 서로에게 주어진 것은 서로의 시선뿐이다. 한시도 피할 수 없는 서로의 시선을 통해서 서로를 보고, 보이는 것이다. 애써 감시하지 않아도 감시당하는 상황이니 적나라하게 보고 있고, 보여지는 관계는 결국 지옥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내뿜는 폭력성은 지옥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아! 정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라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그렇게 해서 타인의 시선이 지배하는 곳에서 타인은 나의 지옥이고, 나는 타인의 지옥이 된다. 하지만 시선과 관계는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인지라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르트르는 닫힌 방을 통해서 오히려 대자적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비록 타인은 지옥이지만 ‘나’를 나의 밖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닫힌 방’은 “좋아, 계속하지”로 벗어날 수 없는 시선을 인정하면서 끝난다. 사람은 오히려 시선 지옥을 통해서 대자적 시선을 획득하며, 공허한 잉여의 삶을 넘어서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자신의 시선만 절대화해서 세상을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오직 자신의 시선으로 지배하려는 모습은 사물과 같은 즉자의 속성이다. 타인의 시선 또한 자신의 시선과 같은 가치라는 것을 부정하는 무지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서로가 상호적인 관계에서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사물처럼 산다는 것 아닌가. 부끄러운 일이다.

닫힌 방은 우리가 관계 속에 사는 방식에 대한 비유다. 크고 작은 많은 관계 속에서 누구나 살아간다. 사람이 있는 곳에 시선이 없는 곳은 없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우리에게 지옥이지만,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분명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 역시 여러 가지의 닫힌 방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선의 전체주의와 독단부터 거부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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