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개의 걸음들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11월 12일(화) 00:00
해남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海沒) 사건’을 아시나요? 해남군 황산면 바닷가에 자리한 옥매 광산은 일제강점기에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명반석(明礬石) 등을 채굴하던 곳이다. 한창 때 이곳 광산 노동자가 1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일제는 옥매광산 광부 200~300여 명을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3월께 제주도로 끌고 갔다.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해안 동굴과 진지 동굴 등 수많은 군사시설물 구축 공사에 이들의 채굴과 발파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내 해방을 맞아 귀향하는 배에 오른 해남 광부들의 가슴은 얼마나 설레고 벅차올랐을까. 하지만 제주에서 해남으로 가는 35t 규모의 목선에 승선했던 옥매산 광산노동자 118명은 1945년 8월 23일(음력 7월 16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화재로 인한 침몰 사고로 끝내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이처럼 ‘옥매산 광산노동자 해몰(海沒) 사건’에는 일제의 광물 침탈과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79년 전 해남 옥매광산 희생광부와 강제동원 역사를 청년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이 재조명하는 전시가 광주 충장로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해남 황산면 주민자치회와 눙눙길 청년마을이 기획한 ‘옥매광산: 별들을 생각하는 밤’ 전(13일까지 광주시 동구 충장로 68)이다.

옥매광산 저장창고를 본뜬 8m 길이의 한지 설치작품 ‘옥매광산 설위설경’을 통과하면 ‘옥매꽃밥’(작가 윤용신)과 ‘노동자’(작가 윤근영) 작품이 놓여 있다. 특히 옥연마을 부녀회와 황산중 학생들이 작가 지도로 황토 두상 테라코타와 종이인형 형태로 손수 제작한 주민참여 작품인 ‘118개의 걸음들’이 눈에 띈다.

주민들은 옥매광산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않기 위해 지난 2017년 옥동 선착장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매년 추모제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사유지로 묶여 있어 방치되고 있는 선착장 옥매광산 저장창고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제강점기 옥매광산 강제동원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 선조들이 흘린 피눈물을 이제 우리 세대가 온전히 기억하며 닦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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