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문학의 전통과 한강의 노벨상-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
2024년 11월 11일(월) 00:00 가가
다산 정약용은 19세기 초엽 해변가 강진 고을에서 유배살이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폐족의 신세로 절망에 빠져있을 고향의 두 아들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다. 원격수업이라고 할 편지를 통한 아들 교육에 온 정성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1802년 12월 22일(음력)자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다. “의원이 3대를 계속해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 집에서 주는 약을 먹지 않은 것처럼 문장 또한 그렇다.” 확정된 원칙이야 아니지만 인류의 오랜 경험칙에서 나온 말이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의원이 대를 이어 집안의 비법을 전수하여 경험이 축적되면 더 정교한 의술을 펼칠 수 있듯이 문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증조부·조부·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에 걸쳐 문장에 뛰어난 선조들이 있어 그들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받고 집안 장서들을 활용해야만 더 큰 학자가 되고 문장가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물론 돌연변이야 언제라도 있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우리의 경험상 그렇다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경천동지의 엄청난 뉴스였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우리 국가와 국민 전체가 환희와 쾌감을 느끼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영광이요 우리 광주의 대영광이었다. 아시아에서도 여성 수상자로는 처음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인 노벨문학상을 우리 호남 출신이 받았다는 데서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문장도 또한 그렇다”라는 다산의 말씀을 새삼스럽게 꺼내야만 했다. 일재 이항·하서 김인후·고봉 기대승·미암 유희춘 등의 탁월한 호남 출신의 학자이자 문장가들의 전통이 서려 있는 곳이 호남이다. 눌재 박상·면앙전 송순·석천 임억령·송강 정철·백호 임제·옥봉 백광훈·고산 윤선도 등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 문장가들이 호남 문학의 전통을 세웠던 분들이다. 영의정 박순, 의병장 고경명도 또한 조선을 대표하던 시인이었다. 16~17세기의 학자 문인의 전통을 이어서 19세기 조선 최고의 학자는 이론 없이 노사 기정진이요, 구례에서 살았던 매천 황현은 조선 최후의 대시인이다.
이상의 학문과 문학의 전통이 이어져 오던 호남에는 현대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배출되었다. 다른 작가를 거명할 필요도 없이 원로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딸이 바로 한강이 아닌가. 3대 의원, 3대 문장가가 아니라 수백 년, 수십 대의 의원 집안, 문장가의 집안인 호남이라는 문학적 전통 아래서 한강이라는 작가정신이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문학적 전통을 이어오던 호남에는 국가폭력이라는 가혹한 탄압에 가장 큰 피해와 상처를 입었던 역사적 비극에 시달린 아픔이 있었다. 4·3, 여순 사건, 5·18 등 20세기의 학살사건은 주로 호남에서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강의 문학정신은 호남의 문학 전통과 역사적 비극의 피해와 상처를 극복하려는 트라우마 치유 정신에서 이룩된 위대한 작가정신의 결과였다.
5·18, 4·3, 여순 사건 등 호남 땅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이 양민을 학살한 진실을 감추고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둔갑해 2중, 3중의 가해를 아직도 그치지 않는 오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런 모든 가면을 말끔히 씻어줄 세기의 쾌거였다.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중무장한 계엄군이 무차별 발사로 양민들을 학살하고도 자위권의 발동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부끄럼 없이 조잘대던 그들의 입은 이제 다시는 열 수 없이 자물쇠로 막아버렸다. ‘소년이 온다’는 5·18 희생자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전 세계 인류에게 공감하도록 생생한 실상을 알렸으니 당사자들이야 얼마나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위대하고 장하다. 한강 작가!
빨갱이들의 무장 폭동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40년이 넘도록 살아온 5·18 희생자들, 이미 산화해버린 시민군 영령들, 우리는 한강 작가의 작품으로 모든 누명을 벗고,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했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한 민주투사였음을 세계인들이 인식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은 자들의 영혼 또한 위로를 받을 것이며, 산 자들은 더한층 민주주의 수호에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해 줄 것이다. 한강 작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 유의하세요. (1948년 8월까지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했다)
이상의 학문과 문학의 전통이 이어져 오던 호남에는 현대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배출되었다. 다른 작가를 거명할 필요도 없이 원로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딸이 바로 한강이 아닌가. 3대 의원, 3대 문장가가 아니라 수백 년, 수십 대의 의원 집안, 문장가의 집안인 호남이라는 문학적 전통 아래서 한강이라는 작가정신이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랜 문학적 전통을 이어오던 호남에는 국가폭력이라는 가혹한 탄압에 가장 큰 피해와 상처를 입었던 역사적 비극에 시달린 아픔이 있었다. 4·3, 여순 사건, 5·18 등 20세기의 학살사건은 주로 호남에서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강의 문학정신은 호남의 문학 전통과 역사적 비극의 피해와 상처를 극복하려는 트라우마 치유 정신에서 이룩된 위대한 작가정신의 결과였다.
5·18, 4·3, 여순 사건 등 호남 땅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이 양민을 학살한 진실을 감추고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둔갑해 2중, 3중의 가해를 아직도 그치지 않는 오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런 모든 가면을 말끔히 씻어줄 세기의 쾌거였다.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중무장한 계엄군이 무차별 발사로 양민들을 학살하고도 자위권의 발동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부끄럼 없이 조잘대던 그들의 입은 이제 다시는 열 수 없이 자물쇠로 막아버렸다. ‘소년이 온다’는 5·18 희생자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전 세계 인류에게 공감하도록 생생한 실상을 알렸으니 당사자들이야 얼마나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위대하고 장하다. 한강 작가!
빨갱이들의 무장 폭동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40년이 넘도록 살아온 5·18 희생자들, 이미 산화해버린 시민군 영령들, 우리는 한강 작가의 작품으로 모든 누명을 벗고,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했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한 민주투사였음을 세계인들이 인식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은 자들의 영혼 또한 위로를 받을 것이며, 산 자들은 더한층 민주주의 수호에 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해 줄 것이다. 한강 작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 유의하세요. (1948년 8월까지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