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 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2024년 10월 31일(목) 22:00
대다수 게임은 ‘딜러’(공격), ‘탱커’(돌격), ‘힐러’(지원) 등 크게 3가지 기능으로 균형을 잡는다. 딜러는 공격을 통해 적의 ‘에너지’를 빠르게 소모시키는 역할을 하고, 탱커는 반대로 적의 공격을 최대한 오래 버티는 일을 맡는다. 이 과정에 힐러는 공격수와 수비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축구와 비교하자면 일종의 공격수(딜러), 수비수(탱커), 골키퍼(힐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처럼 캐릭터들의 역할 분담을 통해 ‘게임 밸런스’가 형성되고 이길 수 있는 확률도 덩달아 높아진다. 딜러만 넘쳐나면 공격하기도 전 아군이 몰살당하고, 탱커만 있다면 적의 공격만 받다가 ‘게임 오버’ 되기 때문이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마무리됐지만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는 국감 기간 내내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안을 중심으로 정쟁만 펼쳤다.

민주당은 연일 김 여사의 주가조작과 공천 개입 의혹 등을 두고 대통령실과 여당을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집중 공격하며 대응했다. 한 마디로 ‘맹탕 국감’이었다.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는 올해 국감에 대해 “‘무용론’ ‘역대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의원들 모두 ‘대통령 리스크’와 ‘당대표 리스크’를 물어뜯고 방어하는 데만 몰두했다. 또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상대하는 것도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국정감사 피감기관은 지난 2000년 357개에서 올해 802개로 급증해 사실상 국감 자료를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다는 게 국회 안팎의 평가다.

국감에 뛰는 선수의 준비 부족도 도드라졌다. 앞선 총선 당내 경선에서 ‘경쟁’보다는 ‘충성 맹세’가 빛을 내면서 국감장을 차지한 여야 의원들은 누가 당대표와 대통령을 잘 보호하고, 상대를 공격하느냐에 진용이 맞춰진 듯 했다. 숱한 게임과 스포츠의 경험처럼 ‘다양성이 정치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최악의 국감이 남긴 “여야가 다양성 회복을 통해 ‘정치 밸런스’를 잡아나가는 것이 정치를 건강하게 한다”는 교훈을 곱씹어야 할 때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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