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준비만 잘~ 되어있다면 ‘전문직으로 갈아타기’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09월 30일(월) 09:00 가가
<12> 성악가·유학생 서포터 변신 박원·황선미씨 부부
은행 부지점장→팝페라 성악가 박원 씨
법무팀서 30년 근무 2년전 명퇴
전문 성악 배우며 각종 대회 출전
공연단 창설해 전국 돌며 공연
사서→국제학생회 자원봉사 황선미 씨
전남대 사서 재직후 4년전 명퇴
은행 부지점장→팝페라 성악가 박원 씨
법무팀서 30년 근무 2년전 명퇴
전문 성악 배우며 각종 대회 출전
공연단 창설해 전국 돌며 공연
사서→국제학생회 자원봉사 황선미 씨
전남대 사서 재직후 4년전 명퇴
“꾸준한 자아 탐구와 철저한 준비, 자신감과 용기가 뒷받침돼야 안정적인 인생이모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부지점장에서 팝페라 성악가로, 전남대 사서직 공무원에서 유학생 써포터로 은퇴 이후 ‘화려한 변신’을 한 박원(59)씨와 황선미(여·58)씨 부부의 조언이다.
박씨 부부는 은퇴 전 직업과 동떨어진 직업으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지만, 마치 이전부터 해 왔던 일인 것처럼 능숙하고 전문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는 수십년 동안 자신에 대한 탐구와 미래 계획을 세웠으며,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전 직장을 퇴임하고 용기 있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 덕분이었다.
하얗게 센 파마머리에 힘 있는 성악 공연을 하며 이른바 ‘박토벤’으로 불리는 박씨는 당초 성악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갖고 있었다.
박씨는 전남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민은행 법무팀에서 30년간 일하다가 지난 2022년 명예퇴직을 했다.
은퇴 이후 전업 음악가가 된 박씨는 2022년 123회, 2023년 167회, 올해에도 110회 연주회 무대에 오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도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신년음악회,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월드뮤직페스티벌, 곡성세계장미축제, 강원 평창효석문화축제, 함평 꽃무릇축제·국화축제 등 곳곳에서 초청공연을 했으며 오는 3~4일에는 제21회 광주 추억의 충장축제 무대에도 두차례 오를 예정이다.
그가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아픔이 있었다. 20여년 전 직장에서의 승진, 실적 등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갑상선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갑상선 안병증’ 진단을 받은 박씨는 한쪽 눈의 시신경이 마비돼 눈동자가 안 움직이는 등 증상이 발생했고, 두 차례 전신마취를 동반한 큰 수술을 거치고도 완치가 되지 않아 한쪽 눈이 처지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등 후유증이 남았다.
박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기자 병원 의사로부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고, 취미 이상으로 몰두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니 ‘노래’라는 답이 나왔다. 이 때부터 성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박씨는 전남대 평생교육원 벨간토성악교실 등에서 성악을 배우고, 직장 생활 틈틈이 가요제와 콩쿠르 등에 나가 입상했다. 전문 음악인으로 시작한 것이 아닌 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수상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전국생활음악콩쿠르, 광주음악협회 콩쿠르 등 각종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포함해 총 19번 입상했으며 지난해에는 KBS전국노래자랑(광주남구편)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각종 가요제에서 7번 입상하기도 했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공연을 할 정도면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수입도 되니까 스트레스가 ‘제로’다. 힘든 줄 모르고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공자임에도 연간 3000여만원 수준의 출연료를 얻고 있어 생계 걱정도 덜었다. 이에 더불어 박씨는 정기적으로 버스킹 음악회를 열고 수익금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씨는 비영리공연단체 ‘뮤직스페이스 공감’을 창설하고 공연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단체는 팬플루트, 색소폰, 하모니카, 라틴 가요 등 다양한 장르·악기를 다루는 음악인 12명으로 구성돼 함께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다.
아내 황씨 또한 전남대 사서직 공무원을 30년 동안 해 오다 지난 2020년 명예퇴직을 했다.
황씨는 이듬해 3월부터 (사)ISF국제학생회에 자원봉사자로서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나눔을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황씨는 일종의 한국어 원어민교사로서 하루 2~4시간씩 유학생들을 만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 언어와 문화와 등을 안내하고, 명절 때면 집에 초청해 식사도 제공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같은 일이 일종의 ‘민간 수준의 외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을 찾은 세계 각국의 미래 리더들에게 자발적으로 문화 교류를 이끌고, 장기적으로 한국과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첫 제자가 요르단에서 온 인권변호사와 에티오피아의 법학자였는데, 최근까지도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요르단 인권변호사 제자가 자국으로 초청을 해 열흘 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받은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황씨는 자기 인생 모토를 ‘트리플 써티 라이프’라고 소개했다. 인생은 30세씩 3가지 단계로 나눠진다는 뜻인데, 첫 30년동안 세상을 배우고 그 다음 30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경제 활동을 했다면 나머지 30년 동안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나눔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늘 나누는 삶을 꿈꾸며 준비를 해 왔던 덕분에 어려움은 없었다”며 “더구나 30년 몸담았던 ‘홈 그라운드’가 전남대였던 터라 유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활 팁과 문화, 알찬 정보들이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박씨와 황씨 부부는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하루 빨리 찾아내고,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해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부분 직장 다니는 동안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지 못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퇴직했다가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적응하는 데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하던 일을 그만둔 직후부터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업을 한다 해도 사업 계획을 짜야 하고, 식당 일을 해도 서빙부터 시작해야지 하루 아침에 사장이 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며 “자신이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기 위한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씨는 여기에 더해 제 2의 삶에서는 ‘나눔’의 가치를 더할 것을 당부했다.
황씨는 “인생 이모작이 시작되면 기존의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경제 활동을 하던 시기는 끝난다”며 “이때부터는 자신만 행복하고 끝날 게 아니라 나의 시간과 건강, 에너지를 떼어서 타인과 나누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다. 박씨와 황씨 부부는 모두 정년이 오기 전 명예 퇴직을 해 50대에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는데, 인생의 새로운 시도를 하는만큼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경제력 등 환경이 뒷받침될 때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황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퇴직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을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과 계획이 생겼다면,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또한 은퇴 이후로도 부부가 서로 다른 직업 영역을 갖고 활동하는 것도 오히려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었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수십년 동안 각자의 직장에서 살다가, 은퇴 이후 갑자기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서로에게 적응이 안 돼 다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부부가 각자 영역에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서로가 필요할 때 찾아와 도움을 준다면, 서로 같이 있는 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고 웃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국민은행 부지점장에서 팝페라 성악가로, 전남대 사서직 공무원에서 유학생 써포터로 은퇴 이후 ‘화려한 변신’을 한 박원(59)씨와 황선미(여·58)씨 부부의 조언이다.
하얗게 센 파마머리에 힘 있는 성악 공연을 하며 이른바 ‘박토벤’으로 불리는 박씨는 당초 성악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은퇴 이후 전업 음악가가 된 박씨는 2022년 123회, 2023년 167회, 올해에도 110회 연주회 무대에 오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는 아픔이 있었다. 20여년 전 직장에서의 승진, 실적 등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갑상선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갑상선 안병증’ 진단을 받은 박씨는 한쪽 눈의 시신경이 마비돼 눈동자가 안 움직이는 등 증상이 발생했고, 두 차례 전신마취를 동반한 큰 수술을 거치고도 완치가 되지 않아 한쪽 눈이 처지고 사물이 겹쳐 보이는 등 후유증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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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씨와 황선미씨 부부. |
박씨는 전남대 평생교육원 벨간토성악교실 등에서 성악을 배우고, 직장 생활 틈틈이 가요제와 콩쿠르 등에 나가 입상했다. 전문 음악인으로 시작한 것이 아닌 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수상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전국생활음악콩쿠르, 광주음악협회 콩쿠르 등 각종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포함해 총 19번 입상했으며 지난해에는 KBS전국노래자랑(광주남구편)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각종 가요제에서 7번 입상하기도 했다.
박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공연을 할 정도면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수입도 되니까 스트레스가 ‘제로’다. 힘든 줄 모르고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공자임에도 연간 3000여만원 수준의 출연료를 얻고 있어 생계 걱정도 덜었다. 이에 더불어 박씨는 정기적으로 버스킹 음악회를 열고 수익금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씨는 비영리공연단체 ‘뮤직스페이스 공감’을 창설하고 공연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단체는 팬플루트, 색소폰, 하모니카, 라틴 가요 등 다양한 장르·악기를 다루는 음악인 12명으로 구성돼 함께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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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미(왼쪽 두 번째)씨가 전남대 외국인 유학생들과 식사를 하며 교류하고 있다. |
황씨는 이듬해 3월부터 (사)ISF국제학생회에 자원봉사자로서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유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나눔을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황씨는 일종의 한국어 원어민교사로서 하루 2~4시간씩 유학생들을 만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 언어와 문화와 등을 안내하고, 명절 때면 집에 초청해 식사도 제공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같은 일이 일종의 ‘민간 수준의 외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을 찾은 세계 각국의 미래 리더들에게 자발적으로 문화 교류를 이끌고, 장기적으로 한국과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첫 제자가 요르단에서 온 인권변호사와 에티오피아의 법학자였는데, 최근까지도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요르단 인권변호사 제자가 자국으로 초청을 해 열흘 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받은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황씨는 자기 인생 모토를 ‘트리플 써티 라이프’라고 소개했다. 인생은 30세씩 3가지 단계로 나눠진다는 뜻인데, 첫 30년동안 세상을 배우고 그 다음 30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경제 활동을 했다면 나머지 30년 동안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나눔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씨는 “늘 나누는 삶을 꿈꾸며 준비를 해 왔던 덕분에 어려움은 없었다”며 “더구나 30년 몸담았던 ‘홈 그라운드’가 전남대였던 터라 유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활 팁과 문화, 알찬 정보들이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박씨와 황씨 부부는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하루 빨리 찾아내고, 시간을 들여 최선을 다해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부분 직장 다니는 동안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지 못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퇴직했다가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적응하는 데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하던 일을 그만둔 직후부터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업을 한다 해도 사업 계획을 짜야 하고, 식당 일을 해도 서빙부터 시작해야지 하루 아침에 사장이 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며 “자신이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기 위한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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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미(왼쪽)씨와 박원씨 부부가 버스킹 공연을 한 뒤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다. |
황씨는 “인생 이모작이 시작되면 기존의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경제 활동을 하던 시기는 끝난다”며 “이때부터는 자신만 행복하고 끝날 게 아니라 나의 시간과 건강, 에너지를 떼어서 타인과 나누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밍’도 중요한 요소다. 박씨와 황씨 부부는 모두 정년이 오기 전 명예 퇴직을 해 50대에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는데, 인생의 새로운 시도를 하는만큼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경제력 등 환경이 뒷받침될 때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황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퇴직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을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과 계획이 생겼다면,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또한 은퇴 이후로도 부부가 서로 다른 직업 영역을 갖고 활동하는 것도 오히려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었다고 조언했다.
박씨는 “수십년 동안 각자의 직장에서 살다가, 은퇴 이후 갑자기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서로에게 적응이 안 돼 다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부부가 각자 영역에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서로가 필요할 때 찾아와 도움을 준다면, 서로 같이 있는 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고 웃었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