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그늘에 병든 마음... ‘안타까운 죽음’ 급증세
2024년 09월 09일(월) 20:30
‘세계자살예방의 날 ’…광주·전남 현실 들여다보니
올 상반기 광주 244·전남 331명
지난해보다 각각 26%·15% 증가
근근이 버티던 삶 벼랑 끝 내몰려
경제적 문제로 사망 급격히 늘어
고위험군 발굴 세심한 대책 절실
올들어 광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절반 가량이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가 올해 1월부터 4월 30일까지 고의적 자해로 숨진 유족 97명을 대상으로 동기를 분석한 결과, 정신과적 문제 52.9%, 경제적 문제 49.4%, 육체적 질병 15.3%, 가정내 불화 14.1% 등으로 집계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광주 244명, 전남 311명에 달한다. 한 달에 9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물가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지역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주에서 올해 1분기에만 135명이 숨져 지난해 같은 기간(84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광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2020년 326명, 2021년 380명, 2022년 358명, 2023년 377명 등으로 꾸준했다. 전남 역시 2020년 526명, 2021년 554명, 2022년 485명, 2023년 514명으로 2022년 다소 주춤했지만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광주시는 올해 초 “2022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25명을 기록해 광역시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고 밝혔지만, 이후 사망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실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간 1만 5000여건의 자살 상담 신청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광주시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에 접수된 자살상담 신청건수는 2020년 1만 4423건→ 2021년 1만 5809건→ 2022년 1만 5130건→2023년 1만 4915건→2024년 8월 말까지 9212건이었다.

반면 전남도의 경우 올해부터 상담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는 탓에 전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팀에는 2021년 1051건, 2022년 1023건, 2023년 1331건, 올해 8월까지 1036건 상담신청이 접수됐다.

문제는 자살 충동이 실제 감행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자살 위험이 높아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현장에 응급 출동한 건수가 2020년 684건에서 2021년 874건, 2022년 845건, 2023년 1126건 등으로 집계돼 3년 사이 1.5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는 8월까지 726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사망자가 늘어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코로나19 당시 시행됐던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이 지난해 9월 종료된 데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꺾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경찰청 변사자료 자살통계에서 정신과적 문제 39.8%, 경제적 문제 24.2%, 육체적 질병 17.7% 등으로 나타난 것과 비교해 경제적 문제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자살예방센터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달 12일 오전 광주시 북구에서 A(여·73)씨와 B(여·53)씨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27일에는 광주시 서구에서 40대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으려다 남편만 숨졌다. 식당을 운영했던 이들 부부는 ‘경영난과 대출 빚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에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홀로 아들 2명을 키우던 C(여·39)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시민에게 1대1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전남도는 2021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통한 고위험군 사례 관리와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위기개입팀을 신설해 자살시도 등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경찰, 소방과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김도연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상임팀장은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위험 신호를 보낸다. 이것을 지자체가 놓치지 않고 포착하면 자살률을 확실히 줄일 수 있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한계”라며 “한정된 자원 안에서라도 고위험군을 발굴해내고 보살피는 등 세심한 개입과 지원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