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18’ 광주 밖에서도 들불처럼 일어났다
2024년 09월 08일(일) 21:40
5·18 기념재단 ‘광주 밖 전국의 5·18 진상’ 발간…12일 출판 기념회
연대 투쟁·연행·투신 등 서울·경기 500명 포함 1500명 훌쩍
연행된 이들 중 명단 공개 안돼 정확한 숫자 파악하기 어려워
저자들 “헌법 전문 수록·왜곡 대응 등 전국적 연대 자산 되길”

추석을 한주 앞둔 8일 광주시 북구 망월시립묘지에 미리 조상의 묘를 찾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광주 밖 전국의 5·18

·전북 고교생들 ‘전두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 배포

·부산 대학생·청년, 5·17 확대 계엄 반대 연대 투쟁

계엄군이 의자에 앉힌 뒤 손가락 12V 전기 고문

‘광주학살 진상’ 알린 부산 임기윤 목사 고문 치사

·충남대·공주사대, 가두시위·광주 진실 알리기

·강원 ‘김대중에게 자금 받았다 자백하라’ 고문 당해

·전북대 이세종씨, 계엄군에 쫓기다 사망

·서강대 김의기씨 ‘동포에게 드리는 글’ 뿌리고 투신

·성남 노동자 김종태씨 “민주인사 석방” 분신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전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5·18과 관련해 연대 투쟁을 하거나 연행·구금당하는 등 관련 인원이 1500명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5·18기념재단이 지난달 23일 출간한 책 ‘광주 밖 전국의 5·18 진상’에 담겼다.

이 책은 광주 전남 이외 전국의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증언과 문서 등을 엮어 펴낸 것으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7명의 편저자들이 편찬했다.

앞서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군부는 전국확대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전국에서 2699명을 체포·연행·구금했으며 계엄합동수사본부가 기획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시키기 위해 고문을 자행했다.

책 저자들은 광주·전남 밖의 5·18 관련자 규모가 1500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경기 이외 지역의 관련자가 1000명 내외, 서울·경기 관련자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예비검속으로 조사를 받거나 연행된 이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명단이 공개되지 않거나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책에 따르면 1980년 5월 당시 ‘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가두시위 행렬은 광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전북 지역에서는 1979년 10월 26일 이후 대학생들이 ‘학원자율화’를 추진한다며 가두시위를 열고 고등학생들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을 알리기 위한 유인물을 제작 배포했다. 부산에서도 대학생과 청년들이 5·17 확대계엄을 반대하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 살포를 조직적으로 결행하는 연대투쟁을 했다.

대구에서는 1980년 초부터 계명대, 경북대, 영남대 등 대학생을 중심으로 학원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요구하는 가두시위와 연좌농성, 시국토론 등을 잇따라 펼쳤으며, 충청에서도 충남대, 공주사대, 충북대 등 대학생들이 가두시위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1980년 6월 2일 광주일보(당시 전남매일신문)에 게재된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를 유인물로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전국의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보안부대와 군 부대, 헌병대 구치소(영창)와 민간 구치소 등으로 끌려가 김대중과의 관련성 및 간첩 관련성 등을 추궁당하며 고문을 당했다고 구술했다.

강원 춘천에서는 5월 18일 새벽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학생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보안대 지하실로 끌고 갔다. ‘간첩으로 활동한 바를 밝혀라’, ‘김대중에게 자금을 받았다고 자백하라’는 등 요구를 듣고, 이를 부인하면 코에 고춧가루 섞인 국물을 들이붓거나 철봉에 손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아 놓는 등 고문을 가했다는 것이다.

부산의 한 피해자는 계엄군이 자신을 회전의자에 강제로 앉힌 뒤 12V가 흐르는 전화기 구리선을 손가락에 연결해 전기 고문을 가했다고 구술했다.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 신체적 고문을 하거나 ‘성기에 전기 고문을 가하겠다’는 등 성적 언어폭력, 고문성 옷벗기기 등 성고문도 자행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문 피해자들은 풀려난 이후에도 학교에서 제적되고 후유증으로 트라우마(PTSD)에 시달리는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과정에서 5·18과 관련해 광주 외 지역에서 사망한 이들도 확인됐다. 5월 17일 전북의 이세종(전북대생)씨는 계엄군에 의해 쫓기다 사망해 5·18의 첫 희생자로 확인됐으며 5월 30일에는 서울의 김의기(서강대생)씨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고 투신했다.

6월 14일에는 성남의 노동자 김종태씨가 ‘계엄령 해제’, ‘민주인사와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서울에서 분신했으며, 7월 26일에는 부산에서 시국강연회와 기도회 등을 열어 광주학살의 진상을 전했던 임기윤 목사가 501보안부대 안에서 고문치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저자들은 “5·18은 ‘광주’와 ‘광주 밖’이 연대해서 5·17내란 세력들의 정권찬탈 행위에 맞선 내란저지 투쟁으로, 광주뿐 아니라 광주 밖의 항쟁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며 “광주 밖에서 이뤄진 전국 5·18의 진상이 5·18이 전국적 보편성을 갖고 헌법 전문에 수록되는 데 폭넓은 사회적 동의를 얻으며 왜곡·폄훼에 전국적 연대로 맞설 수 있는 자산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5·18기념재단은 오는 12일 오후 3시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광주 밖 전국의 5·18 진상’ 출판기념 발표회를 열 예정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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