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군주 정조 임금이 그립다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4년 08월 12일(월) 07:00 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고르자면, ‘호학(好學)’이라는 두 글자를 으뜸으로 여기고 싶다. 공자는 ‘논어’에서 모든 것을 다 양보할 수는 있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것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하여, ‘호학’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고 명백하게 말하였다. 학문을 좋아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최고 장기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정조의 신하였던 다산 정약용 또한 양보할 수 없는 일의 하나가 학문을 좋아하는 일이었다. 호학의 군주와 호학의 신하가 만나 조선후기 르네상스가 이룩되었던 점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호학과 함께 다산은 기록을 참으로 좋아했던 학자였다. 그의 일생을 제대로 알도록 기록해놓은 다산의 연보,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라는 기록을 보면 다산의 삶을 참으로 소상하게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 가득차 있다. 1799년 4월 24일 황해도 곡산도호부사로 근무하던 다산은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바로 이어서 형조참의로 옮겨져 의문스럽던 옥사(獄事)를 바르게 시정하는 업무에 임하였다. 참으로 많은 옥사에서 바르지 못한 것들을 올바르게 시정하여 법률가로서의 다산의 본색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던 때였다. 그러나 그 무렵 다산을 무고하고 모함하는 자들이 많아 형조참의 사직소를 올리고 다산은 관계를 떠나는 비통한 시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무렵의 일이다. 기록에 보인다. “12월에 특별한 교지에 의해 세서례(洗書禮) 때의 어제시(御製詩)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올렸다”라는 내용이다. 다산이 38세이면 정조는 48세, 돌아가시기 전 1년도 안 되는 정조의 만년의 일이다. 여기서 ‘세서례’란 세속의 ‘책거리’란 말로 아동들이 책을 한 권 다 마치면 부형들이 떡을 해다가 서당에 갖다준다. 책 한 권 마친 아동을 격려하고 더 많은 책을 배우라는 권장의 뜻이었다. 그런데 아동도 아닌 48세의 임금이 그 바쁜 정사(政事)에도 틈을 내서 ‘춘추좌전’이라는 고경(古經)을 완전히 독파하자, 임금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께서 세서례를 해주자 임금이 시를 짓고 다산을 불러 화답의 시를 지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반백의 임금이 호학하여 책 한 권 읽기를 끝내자, 격려의 뜻으로 노모가 잔치를 베풀어 준 격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기록을 보면, 정조는 책읽기를 그렇게 좋아했고 학문에 그런 열정을 보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조의 ‘호학’에 대해 다산 같은 호학자도 여러 곳에서 감탄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 500년, 27명의 임금이 있었지만, 전반기에는 세종대왕이 그렇게 호학하여 책 읽기에 전혀 게으르지 않았고, 조선후기에는 정조대왕이 호학하여 책 읽기로는 일등의 임금이었다. 고경을 읽어서 요순이 어떻게 정치를 했던가를 알게 되고, 수많은 사서(史書)들을 읽어 고금의 치란흥망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호색(好色)에는 수준급이지만 호학에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고 학문을 멀리 한 군주가 어떻게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 시대에도 호학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대통령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DJ는 참으로 애서가요 호학하는 정치가였다. 그분을 모시고 정치를 했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분이 독서에 열중했음을 목격하였다.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에 그분처럼 밝았던 분을 나는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서양의 기독교 역사까지도 완전히 꿰뚫고 있던 그분의 박학다식한 실력을 누가 감히 따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군주도 학자 군주를 그리워하고 신하도 학자 신하를 잊지 못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참으로 바쁘고 할 일도 많다. 그들에게 호학하라! 책을 읽어라! 라고 권하는 일이 쉽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조 같은 그 바쁜 임금도 50이 가까운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고, 학자 신하 정약용은 18년의 귀양살이에 500권이 훨씬 넘는 그런 방대한 책을 저술했지 않은가. 더구나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이사 가면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에는 더러 휴가 가는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기사도 읽었다. 이젠 책을 버렸다는 기사는 보았지만, 책을 읽었다는 기사는 읽은 적이 없다. 정조나 다산 만큼의 호학과 책읽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대통령도 책을 읽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우리 시대에도 호학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대통령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DJ는 참으로 애서가요 호학하는 정치가였다. 그분을 모시고 정치를 했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분이 독서에 열중했음을 목격하였다.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에 그분처럼 밝았던 분을 나는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서양의 기독교 역사까지도 완전히 꿰뚫고 있던 그분의 박학다식한 실력을 누가 감히 따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군주도 학자 군주를 그리워하고 신하도 학자 신하를 잊지 못한다.
정치하는 사람들, 참으로 바쁘고 할 일도 많다. 그들에게 호학하라! 책을 읽어라! 라고 권하는 일이 쉽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조 같은 그 바쁜 임금도 50이 가까운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고, 학자 신하 정약용은 18년의 귀양살이에 500권이 훨씬 넘는 그런 방대한 책을 저술했지 않은가. 더구나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대통령이 이사 가면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전에는 더러 휴가 가는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었다는 기사도 읽었다. 이젠 책을 버렸다는 기사는 보았지만, 책을 읽었다는 기사는 읽은 적이 없다. 정조나 다산 만큼의 호학과 책읽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대통령도 책을 읽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