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삶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2024년 08월 05일(월) 00:00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은 가장 오랫동안 반복된 질문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완전하고 명쾌한 하나의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지금도 되풀이된다. 사람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어떤 삶을 통해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되는가에 대한 의문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삶에 대한 것에서 출발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그의 삶을 모르거나 제외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누군가에 대한 이해는 곧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다. 그래서 당연히 큰 업적과 지위와 명성이 결코 좋은 삶을 보증하지 않는다. 눈앞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매일 너무나 적나라하게 목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훌륭하다거나 비겁하다거나 또는 비열하다고 말할 때 그 근거는 그 사람의 태도다. 이때 태도는 곧 생각을 행동함이자,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판단으로, 태도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본다고 믿는다. 문제는 비겁한 사람은 애초부터 비겁하게 태어났거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은 본래 훌륭하게 태어나고 비겁한 사람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태생적 조건과 환경을 탓하면서 무책임과 무능함을 변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삶의 주체를 스스로가 아니고, 외부의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에 의하면 누구에게나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 할 수 있는 기회는 늘 열려있다.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필연적 조건이다. 이 조건은 절대적이어서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되지 않는다. 즉, 삶의 본질은 선택하는 자유와 그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사는 삶, 그것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선택과 행위로 이루어진 삶이다. 별 특별함이 없다고 여기는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단한’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 역시 살아온 삶과 이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태도로 자신을 말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삶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너무나 드문 일이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은, 분열되지 않은 그런 사람을 멀리서라도 볼 수 있는 일은 이제 큰 행운이다. 모두가 왜소해지는 시대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삶으로 자신을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악순환에 누구나 몸과 마음과 열정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지치게 된다. 하지만 삶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삶은 삶을 잉태하지 못한다.

소란스러운 말의 힘과 허세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삶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외설스러워지며 농담거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던져 주는 싸구려 웃음거리와 천연덕스러운 사탕발림에 취해간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유기한 채 앞과 뒤가 뒤바뀐 방식에 길들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주입된 무력감과 무책임한 냉소에 기대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니며 체념할수록 행복해진다는 위선에 중독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삶의 생기를 제거해버린 삶 속에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언어가 사라지고 소음만 남는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새로워지는 삶이 외면당하면 이를 표현하는 언어도 쓰임새를 잃는 것이다. 요즘 매일 듣는 고통스러운 소음들이 언어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언어는 삶을 말하기 위한 것이고, 삶을 나누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삶을 핑계로 난장을 반복하는 세상을 두고 니체는 경청되지 않은 언어는 “시장터의 동전소리로 지혜의 소리를 잠재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늘 ‘뒷것’을 자청하며 오직 삶으로 자신을 말하며 삶은 선택임을 보여주고 떠난 한 가수의 이름을 기억한다. 소음이 아닌 삶의 노래를 남긴 그의 노래가 어디서나 그의 삶을 이야기할 것이다. 시장터에서는 삶의 지혜를 덮는 동전 소리가 아무리 요란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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