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시대의 ‘읽기 장벽’ 탐구 - 읽지 못하는 사람들
2024년 06월 14일(금) 00:00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은퇴한 70대 교수가 소설을 펼쳤다가 갑자기 글을 전혀 읽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글자가 뒤죽박죽돼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뇌졸중으로 인해 글자를 보긴 해도 해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천적 문맹’이라고 하는 실독증(失讀症·시각 능력에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쓰여 있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증상)이었다. 독서광이었던 그는 ‘읽기 장벽’(Reader’s block)에 낙심했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상실했던 읽기 능력을 차츰 회복할 수 있었다.

자신을 ‘활자를 다루는 읽기역사학자’라 지칭하는 영국 퀸메리런던대 현대문학 교수인 매슈 루버리는 신간‘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경다양적 읽기의 역사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표현한다. 용어 선택 또한 신중하다. ‘신경다양성’은 ‘신경학적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을 장애가 아닌 다양성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하며 1990년대에 등장한 개념이다. 또한 결함이나 문제를 강조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읽기 장애’ 대신 ‘읽기 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저자는 난독증과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등 신경학적 질환 때문에 읽기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해진 6가지 ‘읽기장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읽기’는 독자들의 상식과 다르다. 저자는 “읽기는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기술이며 굴절적응(생물학적 특질이 본래의 기능과 관계없는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과 신경가소성(뇌의 신경회로가 외부 자극 또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 회복하거나 구조적·기능적으로 재조직되는 능력)이 주는 선물이다”라며 “인간의 뇌는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읽기를 위해 설계되거나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읽기를 위한 보편적인 설계도는 없다”고 밝힌다.

뇌 손상자들은 읽지 못하는 ‘문해력 상실인’으로 바뀌고,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과독증 독자는 ‘표면 읽기’에 그친다. 저자는 머리손상과 질병, 뇌졸중,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읽기 능력을 잃은 사례를 들며 읽기의 본질에 접근한다. 저자는 ‘읽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문해력을 잃는다는 두려움은 ‘읽는다는 것’의 의미뿐 아니라 ‘읽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감춰졌던 읽기의 세계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인 ‘들어가며’에서 6개 장(場)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준다. 1장(문해력 신화 속 지워진 아이들)부터 6장(읽기는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 이르기까지 신경학적 질환과 ‘읽기장벽’, ‘읽는 존재’로서의 인간 등에 대해 폭넓게 살핀다.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읽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게 된다.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나는 읽어야 한다. 내 삶의 대부분은 읽기다”라고 했지만 요즘 대중들은 책을 멀리하고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문해력도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활자대신 숏폼 영상에 익숙한 독자들은 신간에서 다양한 ‘읽기 장벽’의 사례를 읽어가다 자칫 활자 속 미로에 들어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를 간파한 듯 저자는 독자들에게 “편한 대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읽기에 정답이 없듯 이 책을 읽는 방법에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 책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곧 내가 ‘읽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퀘스트·2만2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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