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외교 너무 굴욕적이다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4년 05월 27일(월) 00:00 가가
지난 달 4월은 음력으로는 3월이었다. 음력 3월 10일은 나의 고향마을인 무안군 평산리(平山里)에 있는 평산사(平山祠)의 제향일(祭享日)이었다. 평산사에는 한말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과 송사 기우만 및 두 분의 제자이자 의병활동을 했던 민재 박임상 등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해마다 참석했던 대로 금년에도 참례하여 세 애국자이자 독립운동가의 영혼에 추모와 숭모의 간절한 마음을 바쳤었다. 그 5일 뒤인 음력 3월 15일에는 구례에 있는 매천사(梅泉祠)의 초대를 받고 초헌관으로 참례하여 술잔을 올려 바쳤다. 매천사는 1910년 망국의 소식을 듣자 분노와 억울함을 못 견디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던 시대의 지사(志士)이자 탁월한 시인이던 매천 황현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익현은 74세의 극노인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대장이 되어 일본군과 싸우다가 포로로 일본의 대마도로 끌려갔고, 감옥에서 일본의 물 한 모금 쌀 한 톨인들 먹지 않겠다면서 단식 투쟁을 하다 끝내는 병이 들어 순국하고 말았던 조선의 마지막 학자·의사였다. 그는 벼슬하던 때에도 불의한 권력에 맞서 투쟁하다 제주도로 귀양가고 흑산도로 귀양갔는데, 흑산도는 그 당시 무안 땅이어서 제자가 살던 마을에 사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최익현은 조선을 침략하던 일본에게 16 죄(罪)를 성토하면서 거짓과 위계로 조선 침탈을 감행할 때 침략을 멈추고 당장 물러가라고 죽음을 각오한 싸움을 전개한 의병장이었다. 그런 뜨거운 의혼이 평산사에는 엄연하게 살아있고, 우리 국민들에게 일본을 그대로 두지 말라고 무서운 눈빛으로 우리를 격려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매천 황현은 누구인가. 광양에서 태어나 뒷날 구례로 옮겨 살았지만 조선을 대표하던 시인이요, ‘매천야록’이라는 뛰어난 역사책을 저술한 당대의 역사가였다. 그는 진사(進士) 이외의 벼슬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은 시골의 선비에 지나지 않았으나 불타는 애국심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나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망국 소식에 곧바로 음독 자결로 나라에 보답한 애국자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얼마나 많은 우국지사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자결을 감행하면서 일본에 대한 원통함을 참지 못했던가. 그들 모두를 열거하면서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가는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최익현과 황현 두 분의 분노와 억울함을 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 두 분의 혼령이 평산사와 매천사에서 만이라도 생생하게 현존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을 지켜 보노라면 망국 즈음에 불타던 애국심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강제노역, 위안부 문제 등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에 정부 대응은 우리를 미치게 만들어주고 있다.
최근의 사도광산 문제만 해도 정부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네이버 라인 문제는 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무리 일본이 좋고 친일파의 본색을 감추지 않는다고 해도 명색이 국가라면 국가의 체면은 살려내는 외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 대 국가의 외교가 아니라 친일사대주의 외교가 전개되고 있으니 최익현, 황현의 분노와 억울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현재에 20세기 초 나라가 망할 때의 심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일만은 아니다. 최익현, 황현의 우국충정이나 애국심은 그때로서는 참으로 탁월했다. 그러나 오늘 세계화 시대에 일본을 적국으로, 침략세력으로 여길 수는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민족의 자존심이나 주체적이고 정체성을 지닌 외교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잘못은 잘못이라고 따져야 하고 잘못을 따져서 시정하지 않을 때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외교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굴종과 굴욕의 외교만 진행되고 있으니 민족의 혈기를 그냥 묻어둘 수 없지 않은가.
정권은 유한하고 민족과 국가는 영원하다. 한시적인 정권의 유지를 위해 민족의 혼을 말살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야말로 공정한 외교, 상식적인 외교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평산사와 매천사의 최익현과 황현의 영혼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외교로 환원해야 한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얼마나 많은 우국지사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자결을 감행하면서 일본에 대한 원통함을 참지 못했던가. 그들 모두를 열거하면서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가는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최익현과 황현 두 분의 분노와 억울함을 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 두 분의 혼령이 평산사와 매천사에서 만이라도 생생하게 현존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을 지켜 보노라면 망국 즈음에 불타던 애국심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강제노역, 위안부 문제 등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에 정부 대응은 우리를 미치게 만들어주고 있다.
최근의 사도광산 문제만 해도 정부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네이버 라인 문제는 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무리 일본이 좋고 친일파의 본색을 감추지 않는다고 해도 명색이 국가라면 국가의 체면은 살려내는 외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 대 국가의 외교가 아니라 친일사대주의 외교가 전개되고 있으니 최익현, 황현의 분노와 억울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현재에 20세기 초 나라가 망할 때의 심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일만은 아니다. 최익현, 황현의 우국충정이나 애국심은 그때로서는 참으로 탁월했다. 그러나 오늘 세계화 시대에 일본을 적국으로, 침략세력으로 여길 수는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소한의 민족의 자존심이나 주체적이고 정체성을 지닌 외교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잘못은 잘못이라고 따져야 하고 잘못을 따져서 시정하지 않을 때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외교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굴종과 굴욕의 외교만 진행되고 있으니 민족의 혈기를 그냥 묻어둘 수 없지 않은가.
정권은 유한하고 민족과 국가는 영원하다. 한시적인 정권의 유지를 위해 민족의 혼을 말살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야말로 공정한 외교, 상식적인 외교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평산사와 매천사의 최익현과 황현의 영혼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외교로 환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