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전 AP특파원 별세
2024년 04월 22일(월) 19:05 가가
향년 76세…80년 5월 현장 취재
“숭고한 기자정신 높이 평가” 추모
“숭고한 기자정신 높이 평가” 추모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 전 AP통신 특파원이 별세했다.
AP통신은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에서 별세했다는 보도를 냈다. 향년 76세.
고인은 1947년생으로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귀국 후 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정치과학을 공부한 뒤 AP통신에 입사했다.
고인은 1980년 5월 22일부터 27일까지 광주를 찾아 5·18 현장을 취재 보도했다. 기사에는 “광주 시민들은 (기자들과 담화에서) 시위는 처음에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공수부대들이 18~19일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소총과 총검으로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고인은 1997년 ‘5·18 특파원 리포트’ 책에서 “5·18은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찬 시민들 앞에서 이들은 시위대를 추격하며 곤봉으로 때리고, 최루탄은 물론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는 등 문구를 남겼다.
지난 2017년에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5·18기념재단 주관으로 열린 5·18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5·18 당시 취재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다.
학술대회에서 고인은 5·18 당시 택시를 타고 밤길을 걸어 광주에 진입해 임시 시체안치소, 병원 영안실, 상무관 등을 돌며 단 하루 만에 시체 100구를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대부분 총에 맞거나 몽둥이질 당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고인은 1980년 5월 27일 자신이 코 앞에서 목격한 도청진압적전과 관련해서는 “전문적 군사작전, 전형적 시가지 전법이었다”고 비판했다.
“계엄군이 재진입하는 새벽 관광호텔(금남로 전일빌딩 맞은편) 방의 창을 통해 군의 작전을 볼 수 있었다. 전문적 군사 작전이었다. 공수부대는 옥상부터 차례로 도청을 탈환해 나갔다. 몰래 사진을 찍으려다가 저격수의 총격을 받았다. 내가 외국기자인 줄 알면서도 사격을 한 것이다. 불에 탄 윤상원의 시체도 봤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5·18 이후 레바논에서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을 취재하다 1985년 무슬림 시아파 단체에 납치돼 7년 가까이 구금됐다 풀려났으며 이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플로리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 2015년 은퇴한 뒤 버지니아주 북부에 있는 작은 말 농장에서 지냈다.
한편 5·18기념재단은 22일 추도 성명서를 내고 “테리 앤더슨 기자의 숭고한 기자정신으로 우리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정의를 위해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와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언론인으로서 5·18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광주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진심어린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5·18 진실규명과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기자님의 공적을 기리며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AP통신은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에서 별세했다는 보도를 냈다. 향년 76세.
고인은 1980년 5월 22일부터 27일까지 광주를 찾아 5·18 현장을 취재 보도했다. 기사에는 “광주 시민들은 (기자들과 담화에서) 시위는 처음에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공수부대들이 18~19일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소총과 총검으로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고인은 1997년 ‘5·18 특파원 리포트’ 책에서 “5·18은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찬 시민들 앞에서 이들은 시위대를 추격하며 곤봉으로 때리고, 최루탄은 물론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는 등 문구를 남겼다.
고인은 1980년 5월 27일 자신이 코 앞에서 목격한 도청진압적전과 관련해서는 “전문적 군사작전, 전형적 시가지 전법이었다”고 비판했다.
“계엄군이 재진입하는 새벽 관광호텔(금남로 전일빌딩 맞은편) 방의 창을 통해 군의 작전을 볼 수 있었다. 전문적 군사 작전이었다. 공수부대는 옥상부터 차례로 도청을 탈환해 나갔다. 몰래 사진을 찍으려다가 저격수의 총격을 받았다. 내가 외국기자인 줄 알면서도 사격을 한 것이다. 불에 탄 윤상원의 시체도 봤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5·18 이후 레바논에서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을 취재하다 1985년 무슬림 시아파 단체에 납치돼 7년 가까이 구금됐다 풀려났으며 이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플로리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다 2015년 은퇴한 뒤 버지니아주 북부에 있는 작은 말 농장에서 지냈다.
한편 5·18기념재단은 22일 추도 성명서를 내고 “테리 앤더슨 기자의 숭고한 기자정신으로 우리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며 정의를 위해 앞장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와 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언론인으로서 5·18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광주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진심어린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5·18 진실규명과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기자님의 공적을 기리며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