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존을 위한 종교적 실천방안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4년 03월 08일(금) 00:00 가가
“일원(一圓)의 내역을 말하자면 사은(四恩)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써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라”고 원불교 대종경(大宗經) 교의품(敎義品)에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환경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구절 때문이기도 하다. 천지만물이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 죄복을 줄 수 있는 죄복의 권능자이며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불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생태적 세계관의 근거이며 러브로크(Love-Lock)와 마굴리스(Margulis)가 제기한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과 상통되는 우주관이라 할 수 있다.
“견성한 과학자가 나오면 내 말을 증명 할 것이라”하신 대종사의 말씀처럼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간 기계문명은 자연을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생태적 질서를 파괴해 왔으며, 그 결과 전 생명체의 파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닫고 있다. 환경의 문제는 이제 어느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과 인종과 사상을 초월한 전체 생명의 문제다. 그렇다면 환경보존을 위한 종교적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조금 더 실천적인 전담기구가 구성되어야 한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적인 자각과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자의 노력이 사회 변화의 힘이 되려면 연대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연대활동에 동참하는 일이다. 환경운동은 여러 형태의 사회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환경운동가나 평화주의자들이 구체적 정강정책을 내걸고 녹색운동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 정치지도자들이 환경문제를 주제로 회의를 갖고 유엔 산하에도 환경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들을 두고 있다. 종교적 입장에서도 다른 단체들과 연대할 일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함께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공동체 운동의 모색이다. 참 문명 세계는 밖으로 물질문명의 발달, 안으로는 정신문명의 발달이 조화 된 세계로 영육의 균형 속에 서로 은혜를 알아 보은하고 서로 도와 고루 성취하는 사회이며 이는 공익사회, 공도사회이며 낙원세계라 하였다.
인류가 그간 자유와 평등, 풍요를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해온 오늘의 세계는 인간이 승리를 자만하는 사이 스스로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인류 생존의 기반마저 황폐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인간을 물질의 노예상태에서 구하는 길은 삶의 방식에 전환을 가져오는 길 밖에 없다. 물질의 소유와 소비에서 삶의 기쁨을 확인하려는 인간은 소유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인간이 처음으로 소유하여야 할 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소유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을 새롭게 생각하는 운동을 시작했으면 한다. 산업사회의 익명성은 인간의 이기심을 더욱 고질화 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익명성 사회의 무책임성을 형성하고 도시지역의 종교간 생산물을 직거래하는 방식도 운동의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직거래 운동이 성공하려면 소비자는 생산자의 수익을 보장하고,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랑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또한 다소 불이익이 있더라도 기다리며 극복하려는 너그러움과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 운동은 소집단적 성격을 갖지만 우주 전체를 공동체로 보는 일원주의의 하나에 기초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서 말하는 파란고해(波瀾苦海)의 극복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상태, 즉 사회 환경과 자연 환경이 모두 바람직하게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실천은 바로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조건과 그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할 때 그간 우리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의 터전이 되는 사회 환경의 문제, 자연 환경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소홀했던 점을 반성해야 하리라 본다.
이제 종교는 여러 모임을 통해 인류 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을 해나가는 출발이 되고 더 나아가 종교적 및 사회적 연대를 통해 그 성과를 높이는 계기의 출발점 한 살림의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
공동체 운동은 소집단적 성격을 갖지만 우주 전체를 공동체로 보는 일원주의의 하나에 기초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하나의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서 말하는 파란고해(波瀾苦海)의 극복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상태, 즉 사회 환경과 자연 환경이 모두 바람직하게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실천은 바로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조건과 그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할 때 그간 우리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의 터전이 되는 사회 환경의 문제, 자연 환경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소홀했던 점을 반성해야 하리라 본다.
이제 종교는 여러 모임을 통해 인류 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을 해나가는 출발이 되고 더 나아가 종교적 및 사회적 연대를 통해 그 성과를 높이는 계기의 출발점 한 살림의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