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고경태 지음
2024년 02월 15일(목) 20:15
“나는 앉아 있었다. 얼마 동안 앉아 있었냐면…… 63만 4560시간 이상 앉아 있었던 셈이다.”

2023년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양손이 삐삐선(군용 전화선)으로 묶인 채, 쪼그려 앉은 모습으로 발굴된 유골 A4-5의 독백이다. 신원도 정체도 미상인 A4-5를 비롯해 일대의 유골들은 깊은 잠에 든 모습이었다고 한다.

함께 발굴된 ‘中’ 자가 새겨진 단추를 통해 아직 어린 중학생도 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다시 한번 ‘뼈의 증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폭력의 희생을 유해 발굴을 매개로 심도있게 다룬 책이 나왔다. 최근 고경태가 펴낸 ‘본 헌터’는 한겨레21 창간팀 등에서 30년간 일했던 저자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국전쟁기의 비극을 묘사한 논픽션이다.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식으로 전개한다. 하나는 유골발굴가 ‘선주’의 이야기로 한국에서 사학, 고고학을 전공하고 버클리대 박사과정으로 체질인류학을 공부한 박선주 교수를 모티브로 했다. 박 교수는 현실에서 안중근 의사, 흥수아이 등 역사적 인물의 유해 발굴에 힘썼다.

다른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민간인들의 참상을 다룬 이야기가 주축이 된다. 점차 두 서사는 맞물리며 1950년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또 다른 증언도 잊히지 않는다. 갓난아기를 업고 일행과 함께 끌려가던 젊은 엄마가 어둠을 틈타 옆 콩밭에 잽싸게 숨었다. 갓난아기가 울면 끝장이었다. 그러나 아기조차 울지 않더라고 했다. 정적.”

저자는 피해자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수록해 한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목도한다. 그동안 직면하기 어려웠던 참극을 다크투어리즘 형식으로 파고든다. <한겨레출판·2만원>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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