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연 시인 “詩 쓰기란 바라보는 행위의 산물”
2024년 01월 22일(월) 19:00
장흥 출신…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발간
‘시간’ 모티브로 한 작품 수록

이재연 시인

“제 시가 누군가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줄곧 시를 쓰는 동안은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었어요. 물론 시집을 내고 난 후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죠. 시를 쓰면서 바랐던 것과 연관된 화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걸음이라도 독자들에게 더 다가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장흥 출신 이재연 시인은 2012년 제1회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이 있는 문인이다. 시집으로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를 펴낸 바 있으며, 묵묵히 자신만의 시를 쓰는 시인이다. 지난 2017년 ‘세계의 불가능성’을 주제로 하는 시집을 펴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재연 시인이 최근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파란)를 펴냈다.

첫 시집을 펴낸 지 6년 만에 발간한 작품집은 그동안의 시간의 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들을 담고 있다. 근황을 묻는 말에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좀 천천히 살았던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집을 펴낼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경우다.

일신의 변화가 있거나, 창작에서 한 발 떨어져 창작을 위한 ‘발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별일 아닌 것으로 병원을 조금 들락거렸는데, 그러다 보니 일의 선후가 명백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천천히 했습니다. 동료 몇 분과 함께 강 따라 걷기를 시작하기도 했는데 체력을 위해서도 그 이상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무량한 시간을 따라 걷는 것 같기도 했고 시원과 기원을 따라 걷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요.”

시인은 그동안 걸으면서 또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쓰는 일에 앞서 선행되는 것은 먼저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그는 “세계 속의 대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내 속의 세계를 바라보기도 했다”며 “그 바라보는 일을 글로 옮기는 것이 내게는 시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무릇 창작은 대상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된다. 시인에게 과정은 바라봄일 것이다. “어떤 기준에 의하면 두 번째 시집이 좀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인은 그 늦고 빠름에 무딘 편이라고 한다. 그것은 시집을 묶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시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는 말에서 그의 지향점이 가늠된다.

“이번 시집은 화자의 목소리가 일상성과 구체적 현실에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세계’가 나에게 그렇게 전환을 요구하는 것 같고 나 자신에게도 전환이 필요했으니까요. 그 지점에서 일상성과 구체적 현실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린이 잎사귀를 천천히 따 먹는 저녁/ 수줍음이 많은 작은 꽃들과 함께 구르는 푸른 자갈들//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나무를 낳고 낳아/ 운율을 이루는 평원에 가랑비 오다 굵은 빗방울 떨어진다//(중략)// 유모차 안에 탄 아이는 천천히 다가오며 불러 주는/ 긴 들녘의 노래에 설풋 잠이 들고 시날 평지의 구름을 흩뜨리며/ 흰 새들이 일제히 땅에 내려앉는다”(‘기린이 잎사귀를 먹는 저녁’ 중)

위 시 ‘기린이 잎사귀를 먹는 저녁’은 시인이 사유하는 시간이 복합적으로 투영돼 있다. 구약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 그리고 특정할 수 없는 시간 등이 교차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시간 속에서 탄생하는 무수히 많은 서사들, 상상들, 이미지들은 신비로우면서도 풍요롭다.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으로 이 작품을 말해 보자면 인간의 시간과 신화적 시간이 교차하고 얽혀 들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라 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이재연 특유의 시간 감각으로 만들어진 시적 구조이다. 마치 정글 속에 버려진 사원의 돌담이 자기를 무너뜨린 나무에 다시 의지한 채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모습”이라고 평한다.

앞으로 시인은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시간에 대해, 시에 대해 사유할 예정이다. “책장을 보니 구입해 놓고 보지 않은 책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말에서 다음의 행보가 가늠이 된다. 프로이트 전집을 구해놓고 한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더 많이 읽어야겠다며 웃는다.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운동입니다. 읽고, 쓰고, 걷고, 그리고 잘 노는 것도 계획의 일부죠. 그리고 무엇보다 청용의 해인 갑진년에는 모든 분들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한 한 해를 보냈으면 합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