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은 전체보다 크다 - 임동확 지음
2024년 01월 06일(토) 18:00
규격화하는 폭력의 세계 속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임동확 작가의 말처럼, 시인은 어쩌면 이런 사람일지 모른다. “곧잘 이제껏 마주친 적 없는 우연의 얼굴, 들리지 않은 침묵의 형상을 보여주는” 사람이거나 “꼭 한번은 기적처럼 저마다의 목소리와 음색을 가진 노래의 리듬과 마주친 채”(시 ‘노래와 시인’중) 완성되지 않은 음악을 여전히 연주하는 사람.

임동확 시인이 시집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를 출간했다. “연이은 재난의 시대 속에서 아주 먼 곳이면서 실상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려나오는 희미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쫑긋하며” 써 내려간 글들이다.

‘진경산수도’, ‘곤혹과 웃음 사이’, ‘노래와 씨앗’,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등 4부로 엮은 시집에는 모두 60여편의 시가 담겼다.

표제작인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는 흔히 전체를 부분의 합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에 균열을 낸다.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갖고 있기에 그 누구의 삶과 그 어떤 생명체도 허투루 여겨서는 안되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지우고 감춰서도 안된다는 경고다.

그에게 부분은 모든 전체보다 크거나, 무겁거나, 무한하다. 그래서 “철길 아래 깔린 무수한 포석의 하나가/시속 300㎞의 고속열차를 넉넉히 감당하는 중이라면/때로 제지할 틈 없이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어떤 경우의 수에도 포함되지 않은 예외 하나가/문득 새로운 세계의 심장에 닿는다면/부분이 전체보다 먼저다/백 권의 역사서보다 김종삼의 ‘민간인’ 한 편이/더 깊고 슬픈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모든 전체는 허구다/모든 부분 그대로가 전체”라고 노래한다.

“무심코 나의 심장을 뛰게 하면서 나를 자꾸 어디론가 불러내고 떠미는 거부할 수 없는 미지의 인력(引力)”에 의지해 시를 쓰는 그는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에 앉아 “여태껏 들킨 적 없는 흰 데드마스크를 잠시 벗어 내려놓고(중략)/비로소 제 스스로를 위해 연주하며 가만히 한 발씩 내딛는 너를 느끼”고(‘침묵’) “애써 쌓아올린 인류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인 세력”에 당당히 맞서 5·18 40주기를 기록한 ‘사십 년’을, 이태원 참사를 읊은 ‘축제’를 썼다.

“한 시인의 눈이 여전히 광속보다 빨리 사라지는/영원의 어깨를 붙들고자 밤새 앞서 달려가고 있다면”, 언제나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평균화하는 근대적 폭력의 세계속에서, 당분간 각자마다 결코 공통분모로 환원할 수 없는 심연과 높이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선언한다.

“시는 수동태고, 역설이고, 절정이고, 순정”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직접 쓴 ‘운명을 위한 각서, 군말의 시론’은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가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임 시인은 지금까지 ‘매장시편’,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등의 시집과 시론집을 펴냈다. <황금알·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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