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맛을 보다 - 이상명 지음
2023년 12월 30일(토) 15:00 가가
분홍, 노랑, 보라, 주황…어떤 맛이 느껴지나요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다양한 색들과 접한다. 색은 모든 삶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해있다. 일상에서 보게 되는 다양한 사물은 물론 자연 풍광, 건물들도 모두 색이라는 이미지를 매개로 인식된다.
색은 음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일은 물론 채소, 다채로운 음식은 모두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알게 된다. 맛과 색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색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디자인이나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색상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다. 그만큼 색이 지니는 영향력과 의미는 간단치 않다.
음식의 맛을 색과 결부해 풀어낸 책 ‘맛을 보다’는 맛과 색을 탐색한 책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밀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인 이상명 박사는 이화여대에서 정보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여자 미술대학에서 색채이론을 전공한 전문가다.
저자는 “인간이 어떠한 상황을 판단할 때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의 다섯 감각 중에 시각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 말은 시각정보가 다른 감각정보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우리의 뇌는 시각정보 위주로 상황을 판단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식’(食)이라는 한자어는 사람 ‘인’(人)과 어질 ‘량’(良)이 더해진 글자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이롭고 사람이 좋아해서 즐기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식’(食)의 기원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한다. 하나는 ‘음식이 제기와 같이 받침이 있는 그릇에 담겨 뚜껑이 덮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한다. 또 하나는 ‘곡물의 구수한 냄새에 사람이 모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도 덧붙인다.
어느 편이든 음식을 먹기 전에 우리의 감각이 그것에 자극을 받는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다. 음식의 여러 상태 즉 모양, 질감, 뜨거움의 정도, 분위기 등이 맛의 평가와 느낌에 영향을 주지만 그에 앞서 음식과 관련한 기억이 발동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과 뇌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맛이나 향, 질감 등을 상기해 감각을 되살린다. 뇌에는 맛에 대해 느꼈던 학습이나 경험의 정보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맛깔스럽게 익은 묵은 김치를 보고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침이 고이는 것은 그런 현상이다.
저자는 시각은 맛을 느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신경인류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저서 ‘화성의 인류학자: 뇌신경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에 나오는 사례를 인용한다.
뇌신경 손상으로 색맹인 환자의 임상 실험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토마토는 검은색으로 보여 원래 알고 있던 맛을 느끼지 못했으며 예전에 알던 색과 너무 다르게 보이는 음식들에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 시체 같은 회색과 지저분한 색들로 보이는 음식들을 눈을 감아야 겨우 삼킬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01년 보르도 대학의 와인 양조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이색적이다. 적포도주, 백포도주를 시음 후 감상을 적게 했는데, “레몬, 꿀, 짚과 같은 어휘는 화이트와인의 풍미로 자두, 초콜릿, 담배 등과 같은 어휘는 레드와인의 풍미”를 꼽았다.
그런데 적포도주처럼 보이도록 백포도주에 무미무취 안토시아닌 색소를 넣었다. 피험자들은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붉은색 와인에 ‘치커리’, ‘자두’, ‘담배’라는 풍미를 선택했다.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별사탕을 주었을 때 색에 따라 다른 맛을 느꼈다. 미세한 양이 첨가된 레몬향과 착색료, 설탕 뿐이었는데 말이다. 저자는 “분홍색은 딸기맛, 노란색은 레몬맛, 주황색은 오렌지맛, 보라색은 포도맛, 흰색은 사과맛”이 나도록 느끼게 한다고 봤다. 색만 다른 별사탕이지만 색에 대한 이미지가 맛을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색체는 직감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우리 일상의 많은 판단의 순간에 영향을 주며 그 바탕에는 평상시의 다양한 경험에서 축적된 색채 정보가 있다”며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맛의 평가’와 시각, 그리고 색에 대한 비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고 언급한다.
<지노·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색은 음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일은 물론 채소, 다채로운 음식은 모두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알게 된다. 맛과 색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음식의 맛을 색과 결부해 풀어낸 책 ‘맛을 보다’는 맛과 색을 탐색한 책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밀하면서도 복잡한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는 “인간이 어떠한 상황을 판단할 때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의 다섯 감각 중에 시각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이 말은 시각정보가 다른 감각정보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우리의 뇌는 시각정보 위주로 상황을 판단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식’(食)의 기원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한다. 하나는 ‘음식이 제기와 같이 받침이 있는 그릇에 담겨 뚜껑이 덮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한다. 또 하나는 ‘곡물의 구수한 냄새에 사람이 모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도 덧붙인다.
어느 편이든 음식을 먹기 전에 우리의 감각이 그것에 자극을 받는다.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는다. 음식의 여러 상태 즉 모양, 질감, 뜨거움의 정도, 분위기 등이 맛의 평가와 느낌에 영향을 주지만 그에 앞서 음식과 관련한 기억이 발동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과 뇌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맛이나 향, 질감 등을 상기해 감각을 되살린다. 뇌에는 맛에 대해 느꼈던 학습이나 경험의 정보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맛깔스럽게 익은 묵은 김치를 보고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침이 고이는 것은 그런 현상이다.
저자는 시각은 맛을 느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신경인류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색스의 저서 ‘화성의 인류학자: 뇌신경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에 나오는 사례를 인용한다.
뇌신경 손상으로 색맹인 환자의 임상 실험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토마토는 검은색으로 보여 원래 알고 있던 맛을 느끼지 못했으며 예전에 알던 색과 너무 다르게 보이는 음식들에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 시체 같은 회색과 지저분한 색들로 보이는 음식들을 눈을 감아야 겨우 삼킬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01년 보르도 대학의 와인 양조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이색적이다. 적포도주, 백포도주를 시음 후 감상을 적게 했는데, “레몬, 꿀, 짚과 같은 어휘는 화이트와인의 풍미로 자두, 초콜릿, 담배 등과 같은 어휘는 레드와인의 풍미”를 꼽았다.
그런데 적포도주처럼 보이도록 백포도주에 무미무취 안토시아닌 색소를 넣었다. 피험자들은 인공적으로 만든 가짜 붉은색 와인에 ‘치커리’, ‘자두’, ‘담배’라는 풍미를 선택했다.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별사탕을 주었을 때 색에 따라 다른 맛을 느꼈다. 미세한 양이 첨가된 레몬향과 착색료, 설탕 뿐이었는데 말이다. 저자는 “분홍색은 딸기맛, 노란색은 레몬맛, 주황색은 오렌지맛, 보라색은 포도맛, 흰색은 사과맛”이 나도록 느끼게 한다고 봤다. 색만 다른 별사탕이지만 색에 대한 이미지가 맛을 느끼게 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색체는 직감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우리 일상의 많은 판단의 순간에 영향을 주며 그 바탕에는 평상시의 다양한 경험에서 축적된 색채 정보가 있다”며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맛의 평가’와 시각, 그리고 색에 대한 비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고 언급한다.
<지노·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