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고기다리는’ 성탄절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3년 12월 15일(금) 06:00
몹시 춥고 눈발이 날리는 성탄절 새벽에 교인들은 조를 나누어 동리마다 새벽 송을 하게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가장 먼 곳에 다녀와야 하는 조에 속하게 되었다. 그 추운 겨울날 새벽에 산 고개를 넘어 젖소 목장을 하는 집사님의 댁을 방문하였다. 집사님은 반갑게 우리 일행을 집으로 들어오라 청하셨다. 탁자에는 미리 준비해 둔 따뜻한 우유가 잔마다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미리 짜 놓은 젖을 따뜻하게 끓여서 추운 날씨에 몸 녹이라고 준비한 것이었다. 설탕을 적당히 넣은 따뜻한 우유가 얼마나 맛나던지 달콤한 우유 맛에 별 생각 없이 두어 잔을 연속으로 마셔 버렸다. 그런데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참고 가던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한 생각에 냅다 뛰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어 달리고 달려 교회 화장실에 도착하여 볼 일을 보고 나니 그 추운 날씨에도 온 몸에 열과 땀이 솟아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추억이다.

그때는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를 얼마나 했던지, 대강절이 시작되면 트리와 장식을 교회 안팎으로 꾸미고 교회학교 아이들은 성극, 암송, 성탄찬양과 율동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성탄절 이브에는 교회마다 전야행사가 가장 화려한 문화 행사였다. 나는 유치부때 외웠던 성탄절 성경말씀 구절을 지금까지 잘 외우고 있다. 그 중에 최고 인기 장르는 바로 연극이었다. 어설픈 대사와 볼품없는 의상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한 것들이기에 가장 인기 있고 재미도 있었다. ‘빈 방 없어요’라는 연극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지만 아기예수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그 역할은 매년 아기인형이 맡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성탄절의 기다림은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었지 진정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구나 싶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기다리고기다리는’이라는 것은 한글의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는 예로 잘 쓰는 문구이다. 띄어쓰기의 잘못은 읽는 이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전혀 다른 메시야를 꿈꾸고 기다렸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알아보지도 믿지도 않았다. 현재를 사는 기독교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대강절을 보내며 과연 우리는 어떠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기대는 이천 년전 이스라엘 백성, 그들의 잘못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의 이사야 선지자는 어떤 메시아를 꿈꾸어야 하는지, 또한 그분이 어떤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분인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시 오실 주님은 어떤 분인지, 또 어떤 나라를 이루어 가실지를 기대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11장 4절에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를 심판하실 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차별이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앞에 당당히 서야 할 것이며 당연히 그러한 정의를 꿈꾸어야 한다. 힘과 권력에 취해 불법을 저지르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민 코스프레나 겸손한 사람 흉내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는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가 어떤 세상을 이룰 것인가를 나타내는 구절이 나온다. 6절에서 8절을 보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중략)”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들은 평화로운 동물의 왕국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참된 평화의 나라는 어떤 것인가를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처절한 경쟁과 이기적인 세상은 전쟁의 공포 속으로 많은 사람들을 몰아넣고 있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선을 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꿈꾸는 세상을 우리도 기대하고 기다려야 ‘아! 기다리고 기다리는’ 성탄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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