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출신 황광우 작가 “5·18 시민군 300人 서사 한권에 담았죠”
2023년 10월 18일(수) 19:20 가가
5·18 항쟁 10일 날짜별 재구성 ‘시민군’ 발간
용접공 김여수 등 5인 이야기 인상적
21일 전일빌딩245서 책 헌정식
용접공 김여수 등 5인 이야기 인상적
21일 전일빌딩245서 책 헌정식
“300여 시민의 이야기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5월 광주에 대한 빚갚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름 없는 민중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나름의 부채의식을 40여 년 넘도록 갖고 있었으니까요. 이번 책으로 현장을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광주 출신 작가 황광우(65)가 지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총을 들고 싸우다 죽고, 다치고, 감옥에 끌려간 시민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간 날짜 별로 재구성해 한 편의 오월 서사가 탄생한 것.
“책을 발간했지만 이곳저곳에서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결코 녹록지 않았을 작업의 과정이 가늠되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밀린 숙제를 끝낸 학생처럼 홀가분해보였다.
이번 ‘시민군’은 5·18민주화운동기록물자료 총서로 발간됐다. 황 작가는 “짧게는 2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길게는 43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이 마치 한 편의 위대한 오월서사를 쓰기 위한 과정으로 다가왔다.
“80년 이후로 책을 100여 권 썼는데 이번 ‘시민군’이 가장 보람이 컸어요.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 한 손이 자유롭지 않아 한 손으로 썼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책은 일관되게 그 주제가 ‘광주’입니다.”
이번 책을 쓰기 수년 전인 2016년 황 작가는 오월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린 박효선의 연극 대본을 모아 ‘박효선 전집’을 만들었다. 2017년엔 윤한봉 일대기를 영문으로 작성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집필했으며 2021년에는 ‘윤상원 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윤상원 평전’을 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황 작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어이, 광우. 무명용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게” 그 말이 오래도록 그의 뇌리에 남았다.
황 작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부끄러웠다”며 “평소 이름없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말은 많이 하면서도 정작 민중의 이야기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사실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발간했지만 이번 책은 작가의 목소리가 가장 적게 들어갔다. 하지만 보람은 가장 컸다. 그의 가슴에 오월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로 박혀 있는 듯했다.
300인의 구술을 재구성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5명의 이야기를 꺼냈다.
“쇠망치를 만들어 시위에 참여한 용접공 김여수, ‘데모 좀 한다고 사람을 죽여야!’라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광주로 들어온 구두닦이 박내풍, 5월 20일 심야의 신역전투를 이끈 여성 전옥주, 화순 산골의 순수한 청년 김현채, 서방의 주먹 김태찬이 그들입니다.”
황 작가에 따르면 이들 5명 가운데 김태찬만 생존해 있다. 시민군의 이야기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고 도움을 받았다.
그도 80년 당시 적잖은 고초를 당했다. 당시 그는 다른 대학생들처럼 광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어 뿌렸다. 계엄령이 확대되면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수배령이 내렸다. 그의 친형 황지우 시인도 그때 성북경찰서에 붙들려 죽을 고생을 했다.
“고문을 당하면 3일을 견디기 힘듭니다. 보름 동안 고문을 당했으니 형의 시에 나오듯이 산 것이 산 것이 아니었죠. 경찰서에서 나를 잡기 위해 형과 이간질을 하기도 했지요. 저 때문에 형이 유독 심한 고문을 당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낸 황 작가는 “본업은 혁명운동이었고 글쓰기는 부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몸 담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책을 낼 때마다 작가를 추적하지 못하게 이름을 바꾸었다”고 덧붙였다.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을 발간하면서 처음으로 본명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군’을 모티브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대회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요즘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니 영어 스피치 대회를 열면 좋겠다”는 말에서 ‘오월 세계화’의 방편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오월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오월은 승리하였습니다. 심야의 신역을 지킨 시민들이 있었기에, 도청의 최후를 지킨 시민군이 있었기에 오월은 세계사적 항쟁이 되었어요. 광주는 오월로 세계사의 광주가 되었습니다.”
한편 오는 21일 오후 4시 전일빌딩245에서 오월의 주역들에게 ‘시민군’을 나눠주는 헌정식이 열릴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책을 발간했지만 이곳저곳에서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결코 녹록지 않았을 작업의 과정이 가늠되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밀린 숙제를 끝낸 학생처럼 홀가분해보였다.
이번 책을 쓰기 수년 전인 2016년 황 작가는 오월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린 박효선의 연극 대본을 모아 ‘박효선 전집’을 만들었다. 2017년엔 윤한봉 일대기를 영문으로 작성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집필했으며 2021년에는 ‘윤상원 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윤상원 평전’을 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황 작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어이, 광우. 무명용사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게” 그 말이 오래도록 그의 뇌리에 남았다.
황 작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부끄러웠다”며 “평소 이름없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말은 많이 하면서도 정작 민중의 이야기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사실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발간했지만 이번 책은 작가의 목소리가 가장 적게 들어갔다. 하지만 보람은 가장 컸다. 그의 가슴에 오월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로 박혀 있는 듯했다.
300인의 구술을 재구성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5명의 이야기를 꺼냈다.
“쇠망치를 만들어 시위에 참여한 용접공 김여수, ‘데모 좀 한다고 사람을 죽여야!’라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광주로 들어온 구두닦이 박내풍, 5월 20일 심야의 신역전투를 이끈 여성 전옥주, 화순 산골의 순수한 청년 김현채, 서방의 주먹 김태찬이 그들입니다.”
황 작가에 따르면 이들 5명 가운데 김태찬만 생존해 있다. 시민군의 이야기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고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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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당하면 3일을 견디기 힘듭니다. 보름 동안 고문을 당했으니 형의 시에 나오듯이 산 것이 산 것이 아니었죠. 경찰서에서 나를 잡기 위해 형과 이간질을 하기도 했지요. 저 때문에 형이 유독 심한 고문을 당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낸 황 작가는 “본업은 혁명운동이었고 글쓰기는 부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몸 담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책을 낼 때마다 작가를 추적하지 못하게 이름을 바꾸었다”고 덧붙였다.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을 발간하면서 처음으로 본명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군’을 모티브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대회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요즘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니 영어 스피치 대회를 열면 좋겠다”는 말에서 ‘오월 세계화’의 방편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오월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오월은 승리하였습니다. 심야의 신역을 지킨 시민들이 있었기에, 도청의 최후를 지킨 시민군이 있었기에 오월은 세계사적 항쟁이 되었어요. 광주는 오월로 세계사의 광주가 되었습니다.”
한편 오는 21일 오후 4시 전일빌딩245에서 오월의 주역들에게 ‘시민군’을 나눠주는 헌정식이 열릴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