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위하여
2025년 08월 02일(토) 10:25
해남 출신 김시림 시인 다섯 번째 시집 ‘나팔고둥 좌표’ 펴내
시인들은 저마다의 시어와 감성으로 작품을 쓴다. 관심 분야에 따라 시의 모티브, 창작의 동기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시인은 일상을 노래하고, 문학의 본질에 천착하며, 또 어떤 이는 사계절의 풍경을 묘사하기도 한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풀어내는 시인도 있다. 타자에 대한 연민, 관계성 등에 방점을 두고 시를 쓰는 이도 있다.

해남 출신 김시림 시인은 우리 주위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대상에 주목한다.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시집 ‘나팔고둥 좌표’(상상인)는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가 집약돼 있다.

작품집 전체에 흐르는 기조는 연민과 여백이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전제되지 않고는 획득될 수 없는 정조다.

시인인 황정산 평론가는 “김시림의 시들에는 곧 사라져 갈 운명을 가진 작고 약하고 하찮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며 “시인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안온한 언어로 위로한다”고 평한다.

“병원 로비에는 뚝 떼어놓은/ 심해(深海) 한 조각이 산다//(중략)// 19동 112호, 이 병실엔 수시로/ 폭풍 해일이 몰려온다// 작은 수족관 같은 몸속,/ 어긋난 수치들은 해열제와 인슐린과 전해질과 혈소판/ 수혈 등으로 즉시 교정된다// 스스로 침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당신,/(후략)”

표제시 ‘나팔고둥 좌표’는 병원 로비에 놓인 ‘작은 수족관’ 속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화자는 병실에 누워 있는 이의 몸속을 수족관으로 치환한다. 어긋난 수치는 예외없이 즉시 교정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병실이나 수족관, 우리 사는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이들의 고통과 아픔이 배면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나약하고 고달픈 삶의 ‘좌표’에 매인 이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깊고 따스하다.

마경덕 시인은 “이번 시집은 인간 본연의 자세를 중시한다”며 “무엇보다 여음(餘音)이 남는 시의 여백은 시인에게 가장 큰 힘이다”고 언급한다.

한편 김 시인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그리움으로 자전거 타는 여자’, ‘부끄럼 타는 해당화’ 등을 펴냈으며 ‘불교문예’ 편집장을 맡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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