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봐도 비디오 - 박희준 지음
2023년 10월 06일(금) 20:00
“연체료는 나를 움직이는 연료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짧게 말했다. 대체로 첫 시집을 발간하는 시인은 왜 시를 쓰는지 등을 독자를 위해 자세히 쓴다. 그러나 시인은 압축적인 한 줄로 시인의 말을 압축한다.

박희준 시인의 첫 시집 ‘안 봐도 비디오’는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작품으로 형상화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의 복잡한 감정을 길게 서술하는 게 아닌 몇 개의 단어와 몇 개의 현상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시의 매력을 느꼈다”며 “수학과 과학처럼 원인과 감정, 결과를 정확하게 도출해내지 않아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몇 개의 단어가 만들어내는 식의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무용한 몸통을 관통하는 어떤 것// 무대에 오르지 못한 대사를/ 읊조리는 것// 아은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자취를 감춘 양말이/ 복도를 걷도록 내버려두는 것// 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창문을 닫을 것/ 끝나지 않은 것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첫머리에 실린 ‘에필로그’라는 시는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작품이다. 제일 끝머리에 실리는 글이 에필로그인데 가장 앞에 배치한 것은 다분히 시적인 발상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존재에 대한 사유의 근거가 드리워져 있다 볼 수 있다.

시인인 박성현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에 대한 55편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장간에서 강철이 단련되듯, 끊임없이 단련되는 존재임을 이번 시집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한편 박 시인은 한남대 문예창작과와 동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를 졸업했으며 2023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다. <달아실·1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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