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11명이 그려낸 우리시대의 노동 현실
2023년 09월 08일(금) 07:00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장강명 외 지음

우리시대의 노동현장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한국소설이 드물다. 최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집회. /연합뉴스

흔히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일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전투구같은 정치상황은 물론 고물가와 취업난, 주택난 등이 그러하다. 게다가 미증유(未曾有·지금까지 한번도 있어 본적이 없음)의 사건·사고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철근을 빼먹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지고, 폭우에 강둑이 터져 지하차도가 잠겼다. 교육현장에서 애로를 겪던 초등교사는 극단선택을 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소설가들은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는가.

신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 11명이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직접 겪고, 느끼고, 써내려간 우리 시대의 노동 극사실주의(Hyper Reality) 소설집이다. ‘월급 사실주의’ 동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들여다봤다. 동인들은 작품을 쓸 때 규칙으로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당대 현장을 다룬다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등 3가지 규칙을 정했다.

소설가 장강명은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에서 2010년대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우리시대 노동현장을 담은 작품’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황 작가는 2010년대 중반에 웹툰 ‘미생’과 ‘송곳’을 거론하며 “문학이 그런 서사를 다 놓치고 있다”면서 “한국문학의 위기는 한국문학 스스로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초한 게 아닌가”라고 지적한 바 있다.

11명의 소설가들은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여성과 장애 가족을 돌보는 노인여성(김의경 ‘순간접착제’)을 비롯해 학습지 교사(서유미 ‘밤의 벤치’), IT회사 재무팀장(이서수 ‘광합성 런치’), 여행사 여직원(장강명 ‘간장에 독’), 20살 택배청년(주원규 ‘카스트 에이지’), 특성화고 교사(황여정 ‘섬광’) 등이 현재의 세태를 대변한다.

“이거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삼사일은 멀쩡하거든. 오 일째에 살짝 벌어지고 칠 일째엔 떨어져. 떨어지면 또 붙이면 되고.”(김의경 ‘순간접착제’)

“저는 사료가 아니라 런치가 먹고 싶습니다. 제가 식물이면 광합성 런치라도 할 수 있지만, 이건 뭐 사료를 보고도 런치인 척해야 합니까?”(이서수 ‘광합성 런치’)

11명의 소설가들이 보여주는 11편의 사회상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주택문제와 건축현장 비리, 청년세대의 고민 등 한국사회의 절박한 ‘먹고사는 문제’가 동인들의 개성적인 문체마다 스며있다. 당대의 한국사회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옴니버스 영화와 같다. 이번 단편소설집에는 ‘월급 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이 앞으로도 ‘동시대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쓴 소설’을 축적해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스타인 벡도 통화 긴축이 대공황을 불러 왔다거나 재정지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를 소설에 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작가들을 모았다. 치열하게 쓰겠습니다.”(소설가 장강명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문학동네·1만7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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