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 터져 자결한 매천 황현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3년 07월 17일(월) 00:00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 나라가 망한 날을 맞아 한사람도 국난(國難)에 죽지 않는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랴. 내가 위로는 하늘로부터 타고난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 저버리지 않고 영원히 잠든다면 참으로 통쾌할 것이니,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우국지사요 대시인이요 대학자인 매천 황현(1855~1910)이 운명하기 직전 가족에게 마지막 말했던 유언이었다.

1910년 가을 일본이 조선을 삼켜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매천은 죽기로 각오하고 유시(遺詩) 네 수를 지어 망국의 서러움을 간절하게 읊었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를 회상해보니/ 글자나 배운 사람노릇 참으로 어렵구려(秋燈掩捲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라고 말하여 무의식한 사람이라면 나라 잃은 서러움 견디겠지만, 글자나 배운 지식인이야 망국의 서러움 참을 수 없음을 통절하게 호소하였다. 일본의 조선 침략, 얼마나 부당하고 못된 짓이었기에 분노를 못 참고 나라에 목숨을 바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인가. 그때 매천의 나이 56세, 침략자 일본에 대한 독한 아픔을 목숨을 끊어 항거하였다. 아편을 먹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이, 우리 민족의 분노와 억울함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침략에 나라를 잃은 우리 조선 민족, 35년의 노예 생활에 얼마나 피맺힌 삶을 살아야 했던가. 망국 5년 전 을사조약 때문에도 얼마나 많은 충신·의사·열사들이 목숨을 바치고, 얼마나 많은 의병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가. 왜놈의 지배 아래에서는 또 국내에서 국외에서 풍찬노숙을 마다 않으며 얼마나 많은 독립군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가. 이런 죽음을 무릅쓴 순국과 투쟁을 통해 끝내 우리는 1945년 조국 해방을 맞이하여 나라를 되찾고 광복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 간난신고의 독립 투쟁과 몸을 바치는 희생으로 나라를 되찾았는데, 아니 선조들이 대응을 잘못하여 일본의 침략을 받았지 일본의 침략만으로 나라를 잃은 것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어찌하여 세워진 논리인가. 한국의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이란 말인가. 35년의 식민지 시절, 강제 노역의 고통, 위안부로 성노예 생활을 했던 아픔은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야 미래를 위한 한일 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도 대통령이 해야 할 생각인가. 그런 외교를 성립하는 일을 한국의 대통령이 해야 할 외교란 말인가.

벼슬 한 자리 해본적도 없는 포의(布衣)의 황현, 나라가 망했다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건만, 죽을 수밖에 어떤 도리가 없다고 목숨을 나라에 바치며 일본의 침략에 항거했는데, 아니 그들의 잘못에 대한 어떤 사과와 반성도 없는데, 과거를 따지지 않아야 미래가 열릴 수 있다면, 도대체 역사 원리란 무엇이란 말인가. 지하에 계신 황현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민족정기란 무엇이고 민족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청컨대 역대의 간신전을 보시게/ 나라 위해 죽어간 매국노는 본래 없다네(請看歷代姦臣傳 賣國元無死國人)”라고 애국자들만이 나라 위해 죽어 간다는 황현의 시는 죽어가는 그들을 더욱 애도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애국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그들만이 떵떵거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의 통찰이 너무 예리하다.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이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은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고 일본은 조선 침략을 노골화하여, 면암 최익현의 주장에 의하면 ‘기신배의’(棄信背義) 16죄’라 하여 열 여섯 가지의 약속을 어기고 의리를 배신한 죄악을 저지르며 나라를 삼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의를 저버리고 죄악만 저지른 일본, 그런 일본에게 아부하고 굴종하여 자신의 부귀 호강만 추구했던 매국·친일파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조국이 해방되고도 그들에 대한 응징이나 처벌은 이룩되지 못해 뿌리는 더욱 번지고 살아나 나라의 주류로 형성되었던 것이 이승만 독재 시대요, 군사 독재 시절이었다. 군사 독재 시절도 다 지나갔는데 아직도 그들 세력은 만만치 않아 오늘 나라의 형편이 이 지경이 되었다. 이제라도 황현의 애국심을 잊지 말고 민족정기와 민족혼을 살려내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할 것 아닌가. 지식인 노릇 어렵기만 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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