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팜과 땅심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3년 07월 10일(월) 00:00
올해 들어 K-스마트 팜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한다. K-팝 열풍에 이은 K-뷰티, K-푸드 등의 한류 바람이 전 세계에 불면서 사막 등지에서는 K-스마트 팜 바람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 지능, 정보 통신 기술 등을 연결한 이 농법은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진보된 농업으로 칭송받고 있다.

국내에서 10여 년 전 등장한 스마트 팜은 잎 위주의 채소에서 토마토·파프리카·딸기 등을 넘어 사과·복숭아 같은 노지 작물 재배에 이르기까지 발전되었다. 이젠 물고기 양식과 수경 재배가 결합한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시 농업의 성공 사례로도 번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스마트 팜은 우리 생활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이제 가정용 식물 재배기는 생활 가전 제품 판매망을 통해 구매할 수도 있다. 작은 화분 사이즈에서부터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본 듯한, 힙하고 멋있는 장식품 같은 가전 기기는 얼리 어답터라면 이미 하나쯤 장만했을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스마트 팜 농업이 최고의 해법처럼 떠오르는 이때 농업을 전혀 모르는 한 사람으로서 의구심이 든다. 마치 모든 농업의 문제를 스마트 팜이 해결해 줄 것처럼 과대 선전 내지는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래 사회에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은 답이 될 수는 없는지 말이다.

기후 변화와 고령화 저출산에 대응해야 하는 시대, 농부가 사라지고 먹거리의 안전이 위협받는 있는 요즘 스마트 팜에 총력을 다하는 것이 농업 경제를 살리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마트 팜과 가정의 실내 식물 재배기가 국가와 개인의 식량 생산에 혁명을 일으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와 공동체 및 생태를 위한 최고의 답안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령 기술과 시설 투자로 인한 고비용으로 농업에도 기업화를 가속하고, 해외에서는 경제성 부족으로 줄줄이 폐업하는 사례를 접한다거나, 어마어마한 에너지 사용량으로 탄소 배출에 대해서도 긍정적이 못하다는 점, 그리고 농업 선진국에서 아시아의 본래 생태적인 농법에 주목하는 전문가의 의견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면 앞선 의문이 증폭된다. 땅심으로 키워 내고 자란 식물을 보고 먹어 온 경험 때문일까.

스마트 팜 기사를 읽으며 엉뚱하게도 오래 전에 살던 동네가 떠올랐다. 광주천을 따라 남광주 시장을 지나고 학동 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만나는 동네, 방림동이다. 아담하고 정겨운 근대 모던 한옥과 양옥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동네에는 전에 특별한 생태 정원들이 존재했다. 길가 작은 틈새, 낡은 화분, 고무 대야 등 어디서고 노는 땅 하나 없이 빼곡히 심어진 농작물로 이루어진 정원이다. 상추는 물론 고추, 오이, 호박 그리고 대추나무까지 어느 집 정원이 더 창의적인지 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총천연색을 자랑했다.

곳곳에서 푸른 생명들이 자라고 있는 이런 모습이 유독 내 눈에만 띈 것은 아니다. 예술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나 해외에서 온 유수의 큐레이터들도 어르신들의 칼칼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동네 정원을 보면 농경 민족으로서 인류의 원형인 땅심을 볼 수 있는 대단한 설치 작품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흙을 만지는 일은 일상이었다. 흙을 만지는 행위는 특별히 정서를 위해서나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런 삶의 활동이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험한 흙에서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 닿는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불과 이삽십여 년 만에 늘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자연스런 생태 경관이 우리 주변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아파트 숲 사이에서 계획적으로 깔끔하게 조경된 공원과 보다 정밀하게 조작되고 스마트해진 환경에서 제한적으로 자연을 경험하게 된 셈이다.

스마트 팜에 미래가 없다고 여기진 않는다. 지나고 보면 자동차의 발명 후 초기 등장과 발전의 과정처럼 일상에 파고드는 혁신적인 스마트 팜의 발전 속도에 다소 방어적이고 신파적인 반응인지도 모른다. 다만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스마트 팜 더 나아가 우리의 농업 환경과 생태도 함께 조명되고 다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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