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녀 정착·교육 위해 계속 힘쓰겠다”
2023년 04월 24일(월) 00:00 가가
고려인마을 새날학교 교장 이천영 목사
교사 출신으로 2007년 학교 설립…2021년 인권상 수상
14개국 83명 초중고 과정 교육…2011년부터 학력 인정
교사 출신으로 2007년 학교 설립…2021년 인권상 수상
14개국 83명 초중고 과정 교육…2011년부터 학력 인정
“어느 화창한 봄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초라한 외국인근로자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광주 고려인마을 새날학교 교장인 이천영<사진> 목사. 그는 고려인 동포와 자녀들의 안전한 정착과 교육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고려인 동포의 인권증진과 차별없는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로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초 광주에서 영어교사를 하고 있던 그는 교직생활에 만족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1998년 토요일 오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봄나물을 캐고 들어오는 길에 우연히 초라한 외국인근로자를 보게 된다. 그의 마음에 꼭꼭 묻어주었던 과거의 어두웠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이 땅에 들어와 병들고 밀린 임금으로 고통당하는 외국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것은 ‘과거에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살았던 나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 교장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는 공동묘지 산지기였다.
“당시에는 굶어 죽거나 행려병자로 또는 질병으로 버림받아 죽은 이들이 많았어요. 이들은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죽은 이들을 거두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워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일이 많았다. “저 세상에서는 배부르게 살라며 밥그릇처럼 봉분을 만들어 주는” 아버지를 보며 따스함을 느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공장을 전전했다. 이후 이발사, 중국집배달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했다. 힘들었지만 “반드시 꿈 꾸는 자에게는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군 입대를 해야 했지만 학력 미달로 면제가 되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는 “추운 봄날 교회에서 기도하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이후 중·고등 과정을 검정고시로 1년만에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가 들어갈 곳은 없었다. 임용고시도 떨어지고 교사를 초빙한다는 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화순 능주중학교에 들어가고 이후 전남여상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다 언급한 대로 어느 날 길거리에서 보았던 초라한 외국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
“당시 하남공단에 창고건물을 임대해 외국인근로자 문화센터를 열었어요. 노숙자와 다름없는 외국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센터는 외국인근로자의 사랑방이자 쉼터가 되어갔고 이를 기점으로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 인권상담소 등을 설립했죠.”
너무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데다 아이까지 딸린 이들도 있어 그는 대안학교 필요성을 느꼈다. 우여 곡절 끝에 2007년 새날학교 설립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몸담고 있는 전남여상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21년간 몸 담았던 정든 학교였지만 고려인 동포 자녀를 위한 새날학교를 꾸려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난 2001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고려인마을에서 동포들을 섬기고 있다. 현재 새날학교는 우주베키스탄, 필리핀, 중국 등 14개국에서 온 학생 83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전담교사 25명이 한국어와 모국어를 중심으로 초중고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새날학교 학력이 인정을 받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광주 고려인마을 새날학교 교장인 이천영<사진> 목사. 그는 고려인 동포와 자녀들의 안전한 정착과 교육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고려인 동포의 인권증진과 차별없는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로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 땅에 들어와 병들고 밀린 임금으로 고통당하는 외국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것은 ‘과거에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살았던 나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굶어 죽거나 행려병자로 또는 질병으로 버림받아 죽은 이들이 많았어요. 이들은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죽은 이들을 거두어주셨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공장을 전전했다. 이후 이발사, 중국집배달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했다. 힘들었지만 “반드시 꿈 꾸는 자에게는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군 입대를 해야 했지만 학력 미달로 면제가 되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는 “추운 봄날 교회에서 기도하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이후 중·고등 과정을 검정고시로 1년만에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가 들어갈 곳은 없었다. 임용고시도 떨어지고 교사를 초빙한다는 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화순 능주중학교에 들어가고 이후 전남여상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다 언급한 대로 어느 날 길거리에서 보았던 초라한 외국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
“당시 하남공단에 창고건물을 임대해 외국인근로자 문화센터를 열었어요. 노숙자와 다름없는 외국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센터는 외국인근로자의 사랑방이자 쉼터가 되어갔고 이를 기점으로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 인권상담소 등을 설립했죠.”
너무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데다 아이까지 딸린 이들도 있어 그는 대안학교 필요성을 느꼈다. 우여 곡절 끝에 2007년 새날학교 설립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몸담고 있는 전남여상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21년간 몸 담았던 정든 학교였지만 고려인 동포 자녀를 위한 새날학교를 꾸려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난 2001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고려인마을에서 동포들을 섬기고 있다. 현재 새날학교는 우주베키스탄, 필리핀, 중국 등 14개국에서 온 학생 83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전담교사 25명이 한국어와 모국어를 중심으로 초중고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새날학교 학력이 인정을 받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