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이해할 때 ‘오월 광주’ 실마리 찾는다”
2023년 04월 18일(화) 20:30
‘40년 동학연구 한 길’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
군 복무때 일일보고하며 5·18 의문 갖고 근·현대사 공부
“대한민국 대전환 이뤄갈 지혜 동학 사상·철학서 찾아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민초들의 힘으로 새로운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큰 흐름이었습니다. ‘오월 광주’가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동학혁명의 좌절,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자주적이며 근대적인 국가 건설을 열망했던 시도가 좌절된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40년째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고 있는 박맹수(68) 원광대 원불교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6일 광주시 동구 대의동 비움박물관에서 참배움터 주최로 열린 인문강좌에서 ‘다시 동학의 정신과 역사를 오늘의 거울에 비춰 봄’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우리가 동학혁명을 제대로 이해할 때 ‘오월 광주’의 미완성 꿈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벌교 출신인 박 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 ‘오월 광주’를 꼽았다.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학군단(ROTC) 장교로 임관한 그는 1980년 5월 당시 충청지역 사단 지하 벙커에서 5·18을 접했다. 연대에서 사단사령부로 파견된 연락장교 직책을 맡고 있어 상급부대에서 전달받은 광주 상황을 종합해 매일 새벽에 사단장에게 브리핑을 했다. 이때 ‘뭔가 이상하다’ 의문을 품었지만 어떤 문제제기나 항명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제대 후인 1982년 3월, ‘광주 미 문화원 방화사건’ 주동자로 영광 원불교 성지에서 붙잡힌 정순철(2004년 작고)씨의 ‘공수부대에 의해서 난자된 시신들을 보고 총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최후 진술을 법정에서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 하기 위해 1983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에 들어가 동학과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1827~1898) 선생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철저하게 현장을 찾아 ‘발로 쓰는’ 연구를 하며 ‘남·북접은 하나’ 등 기존 통설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1995년 7월, 일본 홋카이도 대학 인류학교실 옛 표본창고에서 방치된 채 100년만에 발견된 진도출신 동학 지도자의 두개골은 박 교수의 동학 공부에 커다란 방향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홋카이도 대학 유학시절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이노우에 가쓰오(井上騰生) 명예교수와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나라여대 명예교수 등과 지난 2006년부터 2022년까지 ‘한·일 시민이 함께 하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동학 현장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오는 10월 30일 ‘나주 시민의 날’에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기금으로 ‘나주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비(碑)’를 세울 예정이다.

원광대 총장을 역임하고 퇴임한 그는 동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박 교수는 ‘지금 시대에 왜 129년 전 동학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동학은 생명사상입니다. 동학혁명은 살림의 혁명이었고, 동학군은 살림의 군대였습니다. ‘왜 지금 다시 동학인가?’하면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의 대전환이 절실한 시대에 대전환을 이뤄갈 지혜가 동학에 있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붐의 뿌리가 되는 사상과 철학이 바로 동학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태계가 파괴돼 기후위기와 ‘코로나 19’ 팬데믹을 초래했습니다. 동학의 ‘천지만물 막비시천주(天地萬物 莫非侍天主·모든 만물과 사람이 똑같이 존귀한 존재)라는 가르침이야말로 지구가 맞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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