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일은 모두 남의 탓이라니-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3년 04월 17일(월) 00:15 가가
다산 정약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제들이나 제자들에게 책 읽기를 그렇게도 강하게 권장했다. 아들이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 보면, 빼놓지 않고 거듭 당부한 내용은 효제(孝悌)와 독서(讀書)였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구실을 하려면 인륜도덕의 가장 근본인 효제를 실행해야 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에서였다. 그렇다면 다산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을까. 반드시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많은 고전 중에서도 유독 ‘논어’만은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종신(終身)토록 읽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논어’만을 계속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읽지 않을 수 없고, 동서양의 고전이 논어 뿐만 아닌 이상 하나의 책에 종신토록 매달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 해도 아무래도 다른 책보다는 논어를 접할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다잡고 논어를 더 자주 대할 때가 많다. 오늘도 논어를 펴고 몇 구절을 읽어본다. 논어 20편의 마지막은 ‘요왈’(堯曰)편이다. 동양의 이상 사회를 이룩한 성인 임금인 요(堯)임금이 권력을 순(舜)임금에게 넘겨주면서 권면한 말씀으로 시작되는 편이다. 이른바 요순시대에 요임금이나 순임금은 어떤 마음과 정신으로 나라를 통치했는가에 대한 깊은 뜻이 담겨있는 내용이다.
“사해곤궁 천록영종”(四海困窮 天祿永終)이라는 여덟 글자의 경계 말씀은 무서운 이야기이다. 온 세상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임금의 복록은 영원히 끝나고 만다는 뜻이다.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 천명(天命)으로 임금의 지위에 올랐다면 백성의 삶이 곤궁해지지 않도록 온갖 정책을 구현해내야지, 그렇지 않고 백성들이 고달프고 가난해지면 임금의 권력도 끝장이 난다는 내용이다. 물론 옛날의 임금과 지금의 대통령은 차이가 있다. 하늘의 뜻으로 임금의 지위에 오른 요순과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은 다르지만, 민심이 천심(天心)인 이상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은 요순처럼 국민들이 곤궁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제왕적 대통령으로 행세할 수 있는 대통령 중심제의 국가에서는 실제적으로 황제보다 더 큰 권력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막강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요순의 뜻과 다른 정치를 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천록이 영종한다는 무서운 뜻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경계할 말은 더 이어지고 있다. “내 몸에 죄가 있음은 만방의 백성 때문이 아니고, 만방의 백성에게 죄가 있음은 그 죄의 책임이 내 몸에 있다”(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라는 내용은 남을 탓해서는 안되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대 동양의 이상국가는 요순시대의 나라였다. 그런 이상국가를 이끌었던 요순은 특별한 통치술을 발휘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백성들을 곤궁하지 않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네 탓이요’가 아니라 ‘내 탓이요’라고 생각하여 남의 잘못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무엇인가를 파약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도 정확히 들어야 한다고 했다. ‘요순은 풀베는 농부에게도 의견을 들었다’라고 말하여 열린 마음과 진정한 소통을 찬양하였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자. 통치자가 아무리 엉터리로 말과 행동을 하고도 모든 것은 전 정부의 잘못으로 돌리고, 비판하는 언론이나 야당만을 탓하고 있다. 국가의 부재로 국민 159명의 참사가 발생했는데 한 마디의 진정한 사과도 없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조차 안하면서, 자신들은 어떤 잘못도 없다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니, 요순의 시대와는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인가. 노동자, 농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노동조합이나 농민운동은 탄압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런 정권의 천록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남의 죄도 자신의 죄로 여겨야 한다는데, 자신의 죄까지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외치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립기만 하다.
고대 동양의 이상국가는 요순시대의 나라였다. 그런 이상국가를 이끌었던 요순은 특별한 통치술을 발휘했다는 것도 아니었다. 백성들을 곤궁하지 않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네 탓이요’가 아니라 ‘내 탓이요’라고 생각하여 남의 잘못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무엇인가를 파약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도 정확히 들어야 한다고 했다. ‘요순은 풀베는 농부에게도 의견을 들었다’라고 말하여 열린 마음과 진정한 소통을 찬양하였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보자. 통치자가 아무리 엉터리로 말과 행동을 하고도 모든 것은 전 정부의 잘못으로 돌리고, 비판하는 언론이나 야당만을 탓하고 있다. 국가의 부재로 국민 159명의 참사가 발생했는데 한 마디의 진정한 사과도 없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조차 안하면서, 자신들은 어떤 잘못도 없다고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니, 요순의 시대와는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인가. 노동자, 농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노동조합이나 농민운동은 탄압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런 정권의 천록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남의 죄도 자신의 죄로 여겨야 한다는데, 자신의 죄까지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외치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