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3년 01월 09일(월) 00:30
올해 6월부터는 나이를 확인한다며 학번을 물어보거나 ‘민증’(주민등록증)을 내밀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생일을 기준으로 한 나이 세는 법이 하나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제껏 진료를 받거나 세금과 복지 적용 등에는 만 나이를 적용하고 병역법 등에서는 연 나이를 따지느라 그간 있어온 행정적 혼선과 불편함이 많았다고 하니 이 모두가 올해부터는 좋은 방향으로 잘 개선되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전 국민 모두가 어느 한 날을 기준으로 한두 살 어려진다고 하니 꽤나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든다. 새해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얘기가 앞으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얘기가 될 거란 생각에서다.

새해 첫날 떡국 한 그릇을 먹고 이제껏 모두가 함께 나이를 먹어왔는데 앞으로는 떡국 한 그릇 없이도 각자 생일을 맞으면 나이를 더 먹는 셈이다. 나이가 어려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가도 가뜩이나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 그에 따라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을 생각하고 보니 떡국의 의미도 사라지는 건 아닌지 노파심이 든다.

떡국이야 말로 설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그야말로 한날한시 그 의미와 맛을 공감하며 먹어온 세찬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단연코 떡국이다. 나이 세는 법이 바뀐다고 설 음식이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라면 지금의 어린이들이 과연 어른이 되어서도 떡국이 갖고 있었던 사회적 의미와 공동체적 의미를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떡국을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떡국을 먹는 풍습은 매우 오래된 상고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과 같은 역사 문헌에 따르면 정조 차례와 차례를 지내는 음식인 세찬(歲饌)의 하나로 반드시 설날 아침에 먹고 손님에게 대접한 음식이 바로 떡국이었다고 한다.

떡국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중 한자 이름의 ‘첨세병’(添歲餠)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나이를 더해 주는 떡’이란 뜻이었다. 떡의 흰색이 맑고 순박한 삶을 의미하며 길게 빚은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떡을 동그랗게 써는 것은 재화의 풍족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이처럼 떡국 한 그릇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 아니라 전 시대를 아우르는 새해에 갖는 마음가짐과 소망을 표현하는 연대 의식을 담은 행위이다.

공동체인 한 사회가 함께 새해를 맞으며 같은 세찬을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세시풍속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날이 우리에게는 양력과 음력을 통해 두 번이나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날이 두 번인 셈이며 어쩌면 이는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 다짐을 두 번 할 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에 대해 두루 저술한 ‘조선상식문답’에서 새로운 날을 맞는 설날을 ‘조심하는 날’이라고 했다. 시절이 하 수선했던 당시 새해는 그저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해 조심할 것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또한 탈없이 건강하고 풍요롭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것이 세시풍속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유한 인류의 정신으로, 공동체의 기원을 담은 전통적 풍속이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설 풍경이 달라지면서 오래 전부터 있어온 세시풍속이 사라지는 것을 모두가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안타까워 할 것만은 아니다. 계속해서 전통은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본래 의미를 상기하며 지켜나간다면 때로는 귀찮고 불편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세시풍속이 우리 일상에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설날이 다가온다. 올 한 해야 말로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 낙관적이지 못한 전망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그러기에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시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악담이 덕담을 뒤엎고 있는 각박한 세상에서 새해 첫날 모두 둘러 앉아 덕담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떡국 한 그릇은 한 해 시작의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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