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을 읽으며-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2년 12월 12일(월) 00:15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바친다(見危授命), 자기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殺身成仁)라는 공자 말씀이 있다. 위급하고 어려운 때를 만나서 생(生)을 버리고 몸을 바치면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이것을 ‘절의(節義)’라고 이른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홍양호(洪良浩: 1724~1802)의 글은 ‘호남절의록’의 서문(序文)에 나온다. 홍양호는 영조·정조 때의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대제학을 지낸 학자요 문장가였다. 홍양호는 호남 출신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말한 대로 두 차례나 호남에서 고을살이를 했기 때문에 호남을 잘 알던 학자였다. 그래서 ‘호남절의록’ 서문을 짓는다고 했다.

홍양호는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괄 난·정묘호란·병자호란·이인좌 난 등 다섯의 난이 있었다고 하면서 생민이 어육이 되고 나라가 전복될 위기에 빠졌을 때에 죽음을 무릅쓰고 의(義)로 항거한 의병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와 백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의병들이야말로 위대한 의인들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팔도 중에서도 의병을 일으켜 전란에 나아간 사람들이 오직 호남이 가장 성하였고, 왜적을 무찌르고 공을 세운 사람들이 호남에 많았으니 어찌 그 산천이 웅혼하고 빼어나며 풍속이 호탕하고 뛰어나며 의기를 숭상하고 명절을 중시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여 다른 어떤 지역, 어떤 도에도 없는데, 오직 호남에 절의록이라는 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를 말하여 호남인들의 의기와 산천과 풍속의 훌륭함까지를 칭송하였다.

이 책은 의병장 고경명의 7대 후손인 복암 고정헌(1735~?)이 1800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편집한 책이다. 고정헌은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의 벼슬을 역임한 학자와 문장가로 널리 이름을 날렸던 분이다. 5권 5책으로 목판본으로 제작하였는데, 임진의적(義蹟)·갑자의적(이괄 난)·정묘의적·병자의적·무신의적으로 구분하여 편집하고 각각의 병란에 중심 의병장을 열거하고 그분들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던 분들의 사적과 전공을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 충렬공 천곡 송상현·충렬공 고경명·문열공 김천일·무민공 황진·충의공 최경회·충장공 김덕령 등 대표적인 의병장 등의 사적과 공적을 나열하고 그분들과 함께 활동한 의병들을 파악된 대로 모두 기록하여 사적과 공적을 기술하였다.

호남 출신이 아니면서도 호남 의병들의 도움으로 큰 전공과 업적을 이룩한 문열공 조헌, 충장공 권율, 충무공 이순신 등에 관한 기록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실까지 소상하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의 훌륭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남의 의병 하면 크게 알려진 대표적인 인물들이야 역사적으로 빛나고 있으나, 그들을 도와 나라와 백성을 지켜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분들의 업적까지 밝혀 있으니, 더욱 빛나고 자랑스러운 책임을 알게 된다. 김동수 교수가 역주하여 경인문화사에서 2010년에 간행한 번역본 ‘호남절의록’에 기록된 인물들을 통계 숫자로 제공했다. 5대 난 때마다 활동한 의병의 통계는 무려 1463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표급 의병장이 그런 정도의 숫자였다면 “오직 호남에서 가장 성하였다”라는 홍양호의 주장이 정확함을 알게 해준다.

책은 서문만 다섯 분이 지었는데, 승지 유광천·승지 고정헌·홍양호·영의정 이병모·병조참의 양주익 등인데 모두 문장과 학문으로 큰 명성을 얻었던 분들이 나름대로 호남 의병의 절의 정신을 극구 찬양하고 있는 점에서 책의 가치와 중요도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나대용 장군은 충무공을 도와 거북선까지 제작한 뛰어난 장수였으나 그런 혁혁한 업적이 있건만 조정에서 큰 공훈도 내리지 않았으니, 책을 통해 지금이라도 그런 분의 업적을 현양하고 칭송해야만 하리라고 믿는다.

호남은 의기와 절의의 땅이다. 국난에 몸을 던져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공자의 말씀대로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하고 위기에 처해 목숨을 바치는 의인들, 그들은 자신을 바쳐 나라와 백성을 살려낸 절의의 본보기였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을 바친 충의와 절의 정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학혁명으로, 한말의병으로, 일제하의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4·19와 5·18 민중혁명으로 이어졌다. 바로 위대한 호남 정신은 그렇게 면면히 이어졌다. 번역도 양호한 책이니, 호남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그 책 읽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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