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우리 미술 이야기3-최경원 지음
2022년 11월 17일(목) 19:05
일상용품에서 건축까지 ‘여백의 美’가 빚어낸 조선미술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觀稼亭)은 1480년대 건립됐다. 조선의 이념이 가득한 건물로 한마디로 조선 시대 건축의 여백미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사실 동아시아 미학의 백미는 여백의 미, 비움의 미라 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이런 비움의 여백미를 도자기나 사방탁자 같은 일상생활용품에까지 구현했을 뿐 아니라 건축에까지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그 어느 나라의 여백의 미와는 다른 조선만의 탁월한 경지를 구현했다.

그 여백의 미, 비움의 미를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관가정이다. 양동마을 초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덕분에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띈다. 아마도 마을의 종가댁 역할과 관련 있기 때문도 하지만 경관을 고려한 배치로 보인다.

무엇보다 마루를 넓게 만들었다. 관가정이라는 것이 ‘농사 짓는 모습을 내려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주택과는 다른 정자의 기능을 담고 있다. ‘쓰임새 없는 마루를 방들의 면적만큼이나 넓게 만든 것은 바깥 경관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의도와 맞물린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진짜 모습을 담아낸 책 ‘우리 미술 이야기 3’은 디자인으로 읽는 조선의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현디자인연구소 최경원 대표이자 ‘디자인 인문학’, ‘한국문화 버리기’의 저자다. 최 대표는 서울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디자인 인문학 관점에서 우리 미술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풀어내고 있다.

이번 책은 부제가 더 눈길을 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의 비밀’이라는 문구는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소구력이 있다. 저자는 철학의 나라 조선을 모티브로 도자기와 주택, 그림, 옷을 비롯해 심지어 무기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장한다.

분청사기 구름 용무늬 항아리
먼저 저자는 ‘15세기의 현대 추상미술’인 분청사기 구름 용무늬 항아리를 소개한다. 조선의 건국 이념은 주자학이었고, 수련을 통한 자연과의 합일에 뒀다. 저자는 분청사기에 그려진 각종 장식 무늬나 용 그림은 그다지 잘 그려진 게 아니라고 본다. 제작 기법적인 관점에서 구름 용무늬 항아리 그림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다.

“장식이나 용 그림이 잘 그려진 것 같지는 않아도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속성이 추상적으로 잘 표현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청사기뿐 아니라 조선 시대의 거의 모든 문화가 이렇듯 성리학적 이념을 구현하는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자는 승자총통을 ‘조선의 휴대용 캐논포’라고 비유한다. 조선은 건축 초부터 성능이 뛰어난 화포와 첨단 화약 무기를 개발했다. 군사력의 중심은 막강한 화력을 갖춘 화포와 총통일 수밖에 없다. 몸통이 파이프와 유사한 승자총통은 세 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탄환이 발사되는 총열 부분은 길게 만들어져 있고, 중간 마디는 약실이 있어 충격 강화를 감안해 두껍게 만들었다. 뒤쪽 마디는 갈수록 넓어지는 구조로, 손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막대기를 끼울 수 있다.

백자
저자는 왕실도자기에 대해서도 순백자를 선호한 미적 이념으로 상정한다. 성리학의 지향은 우주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 “맑고 순수한 것, 우주의 모든 것을 배양하는 토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채워질 수 있게 비워지는 것을 일컫는다. 무엇이든 자랄 수 있는 토대는 비워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원형 구족반
백자에 걸맞는 아름다운 파트너로 호족반과 구족반을 빼놓을 수 없다. 희고 단순한 모양의 백자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상의 다리가 호랑이 같다고 붙여진 호족반과 개의 다리 모양과 흡사한 구족반은 조형미가 뛰어나다. 전자는 화려한 장식을 가미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특징이며 후자는 심플하되 단조롭지 않는 조형적 처리가 일품이다.

이밖에 책에는 ‘극도의 비움’을 드러낸 사방탁자, 조선의 에르메스 ‘왕실 보자기’, ‘태극으로 만든 달’ 백자 대호, ‘자연을 초대한 인공물’ 지게 등도 만날 수 있다. <더블북·3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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