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킨 약국 내 건강 유지하려 오늘도 문 엽니다”
2022년 11월 16일(수) 17:45 가가
강진 ‘최장수 약사’ 추용남씨, 장학금 등 기부활동도
“돈을 떠나서 수십 년 동안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온 사람들을 봐서라도, 항상 봉사하는 마음으로 약국을 지켜왔죠. 지금 이 나이에 건재하게 약국을 운영하는 사람은 저 뿐일 거에요.”
추용남(87) 약사는 지난 1961년 강진에 처음으로 약국을 개업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줄곧 61년째 약국을 운영 중이다.
그의 10평 남짓한 약국 벽에는 1961년 발급한 ‘약사면허증’과 제2호 ‘약국허가증’ 등 두 개의 빛바랜 액자가 눈에 띈다.
추 약사는 해남 북평면 좌일 출신으로 1961년 대학 졸업 후 약사면허를 취득하고 스물 여섯에 약국을 개업했다. 당시 교통 여건상 해남 북일면이 강진의 생활권이라 인구가 많은 강진 읍내에 택한 것이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라 몇 해 전 부터 처방약을 포기하고 일반약만 판매하고 있다.
그는 환자에게 좋은 약을 처방하기 위해 약을 빻아 조제하던 시절 약 가루를 많이 들이마셔 생긴 직업병으로 기관지 폐질환을 않고 있다.
자식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 약국 운영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그에게 약국 운영은 오히려 건강을 위함이다.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게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할아버지 약 심부름을 하던 꼬마들이 어른이 되어 추억의 약국에 인사차 방문하고 옛날 담소를 나누고 갈 때 행복하고 병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를 위한 그의 봉사활동도 지역의 귀감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자로 지난 71년 세례를 받고 단 하루도 미사를 거르지 않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겸손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항상 자신을 낮추며 살아왔다. 또한 봉사활동으로 강진 ‘JCI클럽’과, 강진진로타리 클럽 1997년 회장을 거치며 ‘관명장학금’ 3000만원을 쾌척하고 여기에 매년 PHF(폴 해리스 펠로우)기금 1000달러를 기부하는 등 크고 작은 기부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부인 김영순(83)씨와 사이에 아들 삼형제를 두었다. 큰아들은 내과 전문의, 둘째 아들은 약사 등 자식농사도 남부럽지 않게 지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자서전을 정리해 남기는 게 마지막 유산이라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강진 글·사진=남철희 기자 choul@kwangju.co.kr
추용남(87) 약사는 지난 1961년 강진에 처음으로 약국을 개업해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줄곧 61년째 약국을 운영 중이다.
추 약사는 해남 북평면 좌일 출신으로 1961년 대학 졸업 후 약사면허를 취득하고 스물 여섯에 약국을 개업했다. 당시 교통 여건상 해남 북일면이 강진의 생활권이라 인구가 많은 강진 읍내에 택한 것이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라 몇 해 전 부터 처방약을 포기하고 일반약만 판매하고 있다.
자식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 약국 운영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그에게 약국 운영은 오히려 건강을 위함이다.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게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지역사회를 위한 그의 봉사활동도 지역의 귀감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자로 지난 71년 세례를 받고 단 하루도 미사를 거르지 않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겸손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항상 자신을 낮추며 살아왔다. 또한 봉사활동으로 강진 ‘JCI클럽’과, 강진진로타리 클럽 1997년 회장을 거치며 ‘관명장학금’ 3000만원을 쾌척하고 여기에 매년 PHF(폴 해리스 펠로우)기금 1000달러를 기부하는 등 크고 작은 기부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부인 김영순(83)씨와 사이에 아들 삼형제를 두었다. 큰아들은 내과 전문의, 둘째 아들은 약사 등 자식농사도 남부럽지 않게 지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자서전을 정리해 남기는 게 마지막 유산이라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강진 글·사진=남철희 기자 chou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