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말 무덤- 김향남 수필가
2022년 10월 31일(월) 00:45 가가
말 무덤(馬塚)? 말의 무덤(言塚)? 광주호 둘레길에 들어서 몇 발짝을 걷다 보면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동수단으로 타고 다니는 말의 무덤인지, 소통의 언어로서 말의 무덤인지를 묻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글귀들을 읽는다.
“말 무덤에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많은 곳에 전해지듯 마을에 나쁜 액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인공의 산인 조산(造山)을 만들고 이를 큰 무덤이라는 뜻으로 말 무덤(大塚)이라고 불렀다는데…. 두 번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 마을 출신 김덕령 장군이 아끼던 말을 이곳에 묻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고요. 세 번째는 옛날부터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싸움이 그칠 날이 없자 마을에 나쁜 말들을 이곳에 묻어 떠돌지 못하게 했다는 언총(言塚)의 의미도 있다고 하네요.”
안내판 너머로 작은 동산 같은 둥근 봉분이 보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는데 그 여운이 제법 길다. 인공 산을 만들어 마을에 들어오는 액을 막고자 했다는 것도 그렇고, 아끼던 말의 무덤을 만들어 애도의 마음을 담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마을에 떠도는 나쁜 말들을 묻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대목은 더욱 그렇다. 무덤이란 죽은 자의 집이며 다시 살아 올 수 없는 것들의 집이니, 죽음이 두렵거든 말조심부터 해야 한다는 경고일 것이다.
의표를 찔린 듯 뜨끔하면서도 한편으론 웃음도 나온다. 직선의 예리함보다 곡선의 부드러움을 택한 듯, 경고라기보다 권고에 가까운 에두름의 형식이 익살스럽다고 할까. 말과 말[말:]의, 소리는 같으면서 뜻은 다른 동음이의어의 활용을 이처럼 재치있게 사용한 예는 흔치 않을 것이다. 말 무덤(마총)에서 말 무덤(언총)을 연상하거나, 거칠고 헐뜯고 비방하는 모든 부정어를 거둬들여 말의 무덤을 만든다는 발상이 유쾌하고 발랄하다. 여기에는 말의 폭력성을 차단하고 예방하려는 고도의 전술과 전략이 담겨 있거니와 위트와 유머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는 것이다. 그 효과가 어땠을지는 몰라도 ‘말’을 ‘중히’ 여긴 그 정신의 증거만큼은 또렷해 보인다.
어렸을 때, 동네에 싸움이 흔했다. 애들도 싸우고 어른들도 싸웠다. 숨바꼭질하다가도 싸우고 땅 따먹기 하다가도 싸우고 숙제하다가도 싸웠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고, 어른들끼리 멱살을 잡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어른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싸우지 마라, 우애 있게 지내라는 훈시를 수시로 앞세우는 ‘어른’일 뿐 아니라 싸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식의 싸움을 한다는 게 매번 놀라웠다.
싸움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2탄 3탄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했다. 단순한 말싸움에서 시작된 일이 폭언과 폭행으로 이어졌다. 그쯤에서라도 잘 정리가 되면 좋은데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고 고소장을 내고 법정까지 가게 되는 난투극도 마다치 않았다. 싸움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싸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 간에도 두고두고 앙금이 남았고 그 여파 또한 곳곳에 미쳤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싸움이 거칠고 격렬해도 무방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 내쏘는 눈빛, 실룩거리는 입술, 불끈 쥔 주먹, 떨어지기 무섭게 되받아치는 말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과 핏대 오른 현장의 살벌한 분위기는 구경꾼의 심장마저 쫄깃하게 만들었다. 내쏘는 눈총과 말 총과 주먹 총들을 조마조마 지켜보며 탐정이 되었다가 심판자가 되었다가 다시 구경꾼으로 돌아오는 일은, 그러나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 일도 아니고 자초지종을 아는 것도 아니니 구경이나 할 수밖에 없다지만, 거기에는 왠지 모를 호기심 외에도 누군가 맞고 때리는 것에 대한 파괴적인 본능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말 무덤’을 지나오며 싸움이건 싸움 구경이건 그 시작은 알게 모르게 장착한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탓하고 나무라고 헐뜯고 비난하는 말들의 부정성과 폭력성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말 무덤’은 지나가는 발길을 붙들어 완곡히 그 경계로 삼으라 한다.
어렸을 때, 동네에 싸움이 흔했다. 애들도 싸우고 어른들도 싸웠다. 숨바꼭질하다가도 싸우고 땅 따먹기 하다가도 싸우고 숙제하다가도 싸웠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고, 어른들끼리 멱살을 잡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어른들은 도대체 왜 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싸우지 마라, 우애 있게 지내라는 훈시를 수시로 앞세우는 ‘어른’일 뿐 아니라 싸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식의 싸움을 한다는 게 매번 놀라웠다.
싸움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2탄 3탄으로 이어지는 일도 흔했다. 단순한 말싸움에서 시작된 일이 폭언과 폭행으로 이어졌다. 그쯤에서라도 잘 정리가 되면 좋은데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고 고소장을 내고 법정까지 가게 되는 난투극도 마다치 않았다. 싸움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싸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 간에도 두고두고 앙금이 남았고 그 여파 또한 곳곳에 미쳤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싸움이 거칠고 격렬해도 무방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 내쏘는 눈빛, 실룩거리는 입술, 불끈 쥔 주먹, 떨어지기 무섭게 되받아치는 말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과 핏대 오른 현장의 살벌한 분위기는 구경꾼의 심장마저 쫄깃하게 만들었다. 내쏘는 눈총과 말 총과 주먹 총들을 조마조마 지켜보며 탐정이 되었다가 심판자가 되었다가 다시 구경꾼으로 돌아오는 일은, 그러나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 일도 아니고 자초지종을 아는 것도 아니니 구경이나 할 수밖에 없다지만, 거기에는 왠지 모를 호기심 외에도 누군가 맞고 때리는 것에 대한 파괴적인 본능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말 무덤’을 지나오며 싸움이건 싸움 구경이건 그 시작은 알게 모르게 장착한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탓하고 나무라고 헐뜯고 비난하는 말들의 부정성과 폭력성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말 무덤’은 지나가는 발길을 붙들어 완곡히 그 경계로 삼으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