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무게-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07월 08일(금) 01:00
댓돌엔 항상 털신과 운동화가 사이좋게 나란히 놓여 있다. 나의 왼발은 처음엔 털신을 신으려 하였으나, 찰나의 순간 운동화를 신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닿을 듯 말 듯, 털신을 향해 가던 왼발은 그대로 운동화를 향하여 수평 이동하였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운동화를 향해 예정에 없던 수평 이동을 한 왼발은 운동화가 털신보다 목이 더 높다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고, 불행하게도 운동화의 목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그 순간 휘청하더니 나무가 쓰러지듯 몸이 왼쪽으로 넘어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나는 매우 생생하고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략 40센티 이상 되는 댓돌 위에서 떨어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쿵하고 났다. 나의 엉덩이가 그대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댓돌 추락 사건이 있은 뒤로 털신과 운동화는 항상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있다.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든 셈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내 몸에서 사고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길어 봐야 몇 초 남짓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갈등과 우유부단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몸에 새긴 고통의 시간은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물리적인 몇 초라는 짧은 시간과 몸에 새겨진 길고도 긴 고통의 시간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 내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의아할 뿐이지만, 신기하게도 엄연한 현실이다. 눈곱만큼도 의도하지 않았음은 물론, 매우 사소하며 지극히 우연적이었던 순간이 이렇게 삶에 큰 생채기를 남긴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질 않는다. 그 순간의 깃털 같은 물리적인 비중에 어울리지 않게 삶에 드리운 무게는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지난 40년간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방금 전 일처럼 불쑥 떠올랐다. 의대 신입생이었던 나는 1학기를 마치고 유급되는 초유의 사태를 당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유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나는, 나를 버린 첫사랑을 지독하게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의 유급을 인정하는 대신,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린 것이다.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그녀를 만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날, 그 일요일 아침, 친구의 전화만 받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건데….’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친구 대신 나간 소개팅 자리였다. 결국 유급이라는 엄청난 대사건은 지극히 사소했던 친구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왜 하필 그때 전화가 왔을까? 왜 그 전화를 받았을까? 이런 것이 운명일까? 그래! 이건 운명이야. 내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당시 나에게 인생이란 이미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열차와도 같았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지독한 운명론자로 살았다. 비겁한 도피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커다란 시련을 어찌 헤쳐 나갈수 있었을까?

댓돌 추락 사건도 어찌 보면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도한 것도 아니고, 지극히 사소하며, 매우 우연적인 일이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리 만무하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무게가 아닐까?

미래(未來)는 무수히 많은 우연이자, 무한한 가능성으로 펼쳐져 있다. 과거는 이미 결정된 단 하나의 필연이다. 인간은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본 과거를 운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무수히 많은 우연 중 하나가 필연으로 결정되는 순간, 즉 운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만약 시간을 시공간이라는 동일한 범주 내의 여러 차원 중 하나로 이해한다면, 이미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중에서 내가 선택하는 세계만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드러날 뿐이다. 운명은 나의 선택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요, 나의 행동이 남긴 잔해이며, 나의 삶에 내가 부여한 명패이다.

40년 전에 나를 숙명론자로 거칠게 몰아붙였던 운명적 대사건도 한낱 댓돌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순간보다 못한 기억으로 전락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운명의 무게는 운명적 순간을 선택하는 지금 현재의 무게와 다름없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