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설 건가?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2년 07월 01일(금) 01:00
어릴 적 편먹기 할 때 쓰는 방법이 있었는데 손바닥을 위로 아래로 내밀면서 주문 같은 걸 외치는 거였다.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면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지역별로 다양하다. 전라도 광주 사람은 ‘편 뽑기 편 뽑기 장끼 세요 알코르 세요’라고 한다. 나는 ‘우에시다리’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대전 지역에서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편을 나누고 나면 내 편과 네 편이 나뉘게 되고 마치 상대편이 원수라도 된양 이기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이기든 지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치면 전부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편먹기 한 것은 모두 무효가 되고 만다. 그래서 다음 번에도 다시 편을 짜서 해야 했다.

우리는 삶의 많은 상황과 조건 속에서 내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편에 속해 있어야 살아가기 편하다. 찬송가 중에 ‘어느 민족 누구게나’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링컨 대통령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1845년 미국 의회가 영토 확장을 위하여 멕시코와의 전쟁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작시자인 제임스 로우웰(J.R.Lowell 1819-1891) 목사가 전쟁에 항거하는 표시로써 1845년 12월에 5행시 18절의 시를 ‘현재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시를 회중교회의 찬송가 학자인 ‘가렛 호더’(Gorrett Hoder)가 임의로 32행을 뽑고 적당히 배열하여 8행시 4절의 찬송시로 개작한 것이다. 1절 가사를 보면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라고 되어 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할 때 나에게 유익이 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위해 그 편에 서 보는 것은 어떠한가.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결단이 매우 중요한 신앙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5장 13절에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가는 중에 신비한 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는 한 장수를 만난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때 그가 대답 하기를 자신은 어느 편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군사령관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조아리며 자신을 부하라고 낮춘다.

지도자들이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정의라 하며 자기를 따르기를 바라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여호수아처럼 진리와 정의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누군가가 내 편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모두가 정의 편에 있게되면 모두가 같은 편이 되지 않겠는가. 이기는 편이 내 편도 아니고, 나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쪽이 내 편도 아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의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라면 법을 지키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법꾸라지’처럼 법을 무시하거나 법을 악용해서 자기의 영달을 꾀하는 모습은 참으로 악한 일이다. 신앙인의 기쁨은 고상하다. 법을 즐거이 지키는 것을 기뻐하고, 소외되고 외면받는 이들이 함께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서로 돕고 협력함을 기뻐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남을 위하는 이들이 기쁘게 여길 줄 아니 고상하다는 것이다.

삶의 많은 목적을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이루어 가는데 두었으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돈을 가지고 싶은 대로 소유 할 수 있고 쓰고 싶은 대로 맘껏 쓸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법을 맘껏 지켜도 되는 자유, 선을 맘껏 베풀어도 되는 자유,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감싸주고 이해해 주고 싶은 자유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도자들이나 선생들의 몫이다. 어느 편에 속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나라, 내가 국민인 나라에서 만큼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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