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탁 - 유제관 편집담당 1국장
2022년 06월 17일(금) 01:00 가가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sports)와 워싱(washing)을 합친 용어로 스포츠로 씻는다, 즉 ‘스포츠 세탁’이라는 의미다. 독재·부패·스캔들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국가나 기업이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이미지를 세탁하는 것을 말한다. 석유 부국이지만 인권 탄압으로 얼룩진 나라 아제르바이잔이 2015년 국제 스포츠 행사를 공격적으로 유치하면서 사용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이미지를 세탁하려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정보가 확산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지난 2월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중국은 마지막 성화 주자로 인권 유린 핵심 지역인 신장위구르 출신 선수를 내세웠다.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의 부정적인 평판을 세탁하려는 속셈이었다. 11월에 열리는 FIFA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의 의도도 마찬가지다. 카타르는 이주 노동자들의 가혹한 고용계약 시스템 문제로 비판받아 온 나라다.
여성 차별과 언론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국부 펀드’를 이용해 48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EPL 구단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때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으로 국제적 비난에 시달린 직후였다. 사우디는 올해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를 창설해 천문학적인 오일머니를 쏟아 붓고 있다. 영국에서 열린 첫 대회에서는 세계 랭킹 126위의 남아공 찰 슈워젤이 우승 상금으로 무려 60억 원을 챙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PGA 투어가 이탈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발표했지만 핵심은 돈의 유혹. 필 미컬슨은 2500억 원, 더스틴 존슨은 1580억 원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브라이슨 디샘보 등 PGA 투어의 간판 선수들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속속 LIV 골프에 합류하고 있다.
스포츠는 죄가 없다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이미지 세탁을 위해 스포츠 이벤트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 왔다. 전두환은 5·18 광주 학살과 독재 이미지를 세탁하려 1982년 프로 야구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야구장은 광주의 한과 울분의 분출구였고, 5·18의 진실은 프로 야구를 통해 오히려 전국에 확산되기도 했다.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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