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2년 06월 03일(금) 00:30 가가
나는 어릴 적 작은 산골 마을에서 살았다. 목회자이신 아버지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것이다.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작은 산골 동네인데, 당시 비포장 도로였고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동네에 전화기가 한 대 밖에 없었다. 자석식(수동) 전화기를 돌리면 교환이 나와서 원하는 곳으로 연결해 주었다. 아침 해는 늦게 뜨고 저녁엔 빨리 지는 전형적인 깊은 산골 마을이다.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조상대대로 심마니, 땅꾼, 사냥꾼을 하며 살았던 동네이고 바깥 세상과 떨어져 있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그 산골에도 한국전쟁의 아픔은 있었다. 아버지가 시무하시던 교회는 1903년에 세워진 교회이고 전쟁 당시 공산당의 핍박은 당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독교는 한국전쟁을 치르며 극단적인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한국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첫 번째 나타난 것은 사랑의 모습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이 말씀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모습들이 그 시대에 많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여수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님과 섬마을 믿음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님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많은 민간인들도 사망했다. 그 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산군의 목표물이 되어 교회당에 갇혀 수십 명이 몰살 당하는 비극이 있었고 공개적으로 처형을 당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희생자 가족들과 교인들은 원수를 갚는 것보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였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공산주의와 공산당을 극도로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북한 지역은 기독교와 그 지도자들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공산주의자들과 타협점을 찾는 듯 하였으나 곧 공산주의 이념과 기독교 신앙은 공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어 기독교인들은 많은 핍박을 당하게 되었다. 공산당은 마침내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몰수해 갔다. 이후 북한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월남을 하게 되었고 남한에서 교회를 세우며 신앙을 유지해 나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기독교인들은 많은 고통을 당했고 반공사상은 몸서리치도록 기독교인들의 심장을 휘감았다. 전쟁 이후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는데 앞장서며 민주 국가를 이루는데 공헌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권력과 함께 피를 많이 흘리는 일에 앞장서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뇌 활동에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인 행동으로 무의식중에 하는 때일 것이다. 물론 성경 말씀의 원뜻은 자기의 착한 행실을 자랑하지 말고 남 모르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모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말한 무의식적인 습관적 행동일 때인데 결국 몸에 배어 있는 상태란 말이다. 착한 행실도 그렇고 나쁜 행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성경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제목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라고 지었다. 선한 삶이 몸에 배어 저절로 나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불의함이 몸에 배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잘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결국 습관이 되고 그것이 사회의 저변이 된다면 과연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6월은 우리나라의 뼈아픈 상처가 있는 달이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공산당을 몰아내고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공헌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인하여 우리의 이웃과 가족에게 아픔을 준 일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어떤 이들의 힘에 이용당하지 않고 이 나라와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고,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뇌 활동에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습관적인 행동으로 무의식중에 하는 때일 것이다. 물론 성경 말씀의 원뜻은 자기의 착한 행실을 자랑하지 말고 남 모르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모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앞서 말한 무의식적인 습관적 행동일 때인데 결국 몸에 배어 있는 상태란 말이다. 착한 행실도 그렇고 나쁜 행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성경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제목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라고 지었다. 선한 삶이 몸에 배어 저절로 나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불의함이 몸에 배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잘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결국 습관이 되고 그것이 사회의 저변이 된다면 과연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6월은 우리나라의 뼈아픈 상처가 있는 달이다.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공산당을 몰아내고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공헌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인하여 우리의 이웃과 가족에게 아픔을 준 일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어떤 이들의 힘에 이용당하지 않고 이 나라와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고,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