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시인-박성천 문화부 부국장
2022년 05월 30일(월) 04:00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은 지성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열었던 시인이다. 적잖은 시인들이 시류에 영합한 글을 쓰거나 시를 출세의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그는 문학의 본질을 추구했다. 다형을 일컬어 ‘한국의 엘리엇’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비 정신을 토대로 지적이면서도 모던한 문학을 지향했기 때문일 터다.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난 다형은 부친인 김창국 목사가 광주 양림교회로 부임하면서 1919년 양림동에 정착했다. 비록 고향은 평양이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그의 탯자리가 광주인 것은 그런 연유와 무관치 않다. 소년 김현승은 당시 선교사들이 정착한 양림동에서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을 바라보며 맑은 시심을 키웠다.

최근 1950년대 조대신문에 실렸던 다형의 시가 발굴돼 관심을 끌었다. 기념사업회가 발간한 ‘다형 김현승의 시간’에는 조선대 재직 시절 학보에 발표했던 시와 산문이 수록돼 있다. 특히 ‘희망’이라는 작품은 가장 최후에 엮은 전집에도 실리지 않은데다 연구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가 남다르다.

(“희망./ 너의 잔뼈가 자라는 땅은./ 언제나 거칠고 외로운/ 나의 마음// 너를 세워/ 지표 우에 못 박으면,/ 너는 어둠에 빛나는 나의 십자가// 너를 깊이/ 음부에 파 묻으면/ 너 또한 순금처럼 더욱 방순하여 지더라…”) 시인은 세파에 휩쓸린 어둠의 시간일지라도 푯대를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희망이 빛나게 되리라고 노래한다.

혹자는 오늘의 시대를 전망 부재의 시대라고 한다. 2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물가와 대출 금리마저 폭등해 서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 승리에만 혈안이 된 채 사생결단의 싸움만을 반복하고 있다. 장삼이사들의 눈물겨운 삶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는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인 듯하다.

/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