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간의 연주-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2년 05월 27일(금) 01:00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던 5월이 지나간다. 5월 한 달이 다 그렇지만 ‘5월 27일’은 유난히 아리고 슬픈 날이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 주십시오.”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 최후 항전에 나선 시민군들이 중무장을 한 계엄군에 의해 17명이나 사살되고, 100여 명 이상이 무자비하게 진압을 당했다. 5·18민중항쟁 마지막 날이다.

광주시민이면 누구나 한 번쯤 ‘나라면 그날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 특히 50대 후반 이상의 세대들은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살아남은 자의 부채 의식이 있다. 그래서 ‘5월 27일’은 5월의 어느 날이 아니라 우리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가슴에 응혈된 상처이다.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5월 27일에 발생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얘기가 있다. 1992년 5월 27일, 유고 연방 탈퇴를 선언한 뒤 내전에 휘말린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 연방 탈퇴를 반대하던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쏜 폭탄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무고한 시민 22명이 숨졌다.

다음날 오후 4시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큰 가방을 들고 사고 현장에 나타났다. 저격병들의 총구가 겨누어졌지만 그는 첼로를 꺼내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22명을 추모하기 위해 22일 동안 같은 시간에 정확히 나타나 연주를 했다. 그는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였다. 세르비아 민병대의 저격 위험도 있었지만 그는 다행히 22일간의 추모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스마일로비치의 위대한 용기와 전장 속에 핀 음악의 감동 스토리는 캐나다의 작가 스티븐 겔러웨이에 의해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로 출간되기도 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산화한 5월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5·18 부활제가 27일 열린다. 전남도청에서 희생된 17명 한 명 한 명을 추모하는 17일간의 연주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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