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박성천 문화부 부국장
2022년 05월 16일(월) 01:00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위 시는 최근 81세로 별세한 김지하 시인의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작품이다. 1975년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아 발표한 시로 그는 ‘저항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41년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생 때 강원도 원주로 이주했다. 서울 중동고를 거쳐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4·19와 6·3 사태 등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숱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문학작품을 통해 예리하게 그렸다.

1970년 지도층의 부패를 질타한 ‘오적’(五賊)은 풍자시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일에 가담한 5인을 을사오적이라 칭한 것처럼 시인은 당시 부정부패를 일삼는 재벌을 비롯해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오적이라 규정했다. 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민초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러나 고인은 1990년대 들어 진보 진영과의 관계가 어긋나고 만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어지는 분신자살을 질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것이 단초가 됐다. 생명 존중에 입각한 고언의 취지였겠으나 진보 진영은 이를 ‘변절’로 받아들였다.

파란과 곡절의 삶 속에서 김지하의 관심은 저항에서 생명으로 변화했다. 민주화 투쟁이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풍자는 결국 사람다운 삶, 생명 존중이라는 대의로 수렴됐을 것이다. 김지하의 세계는 표현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변절’로 의심을 했고, 오랫동안 불화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문학평론가 채광석은 김지하의 변화를 “가장 날카로운 직선의 합이 곧 곡선”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어쩌면 곡선을 배제한 직선은 결국 부러지고 타자도 찌르는 것인지 모른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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