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목숨 바쳐 지킨 광주 … 딸은 춤으로 광주 알린다
2022년 05월 15일(일) 21:15
[우리 가족의 5‧18, 그리고 나의 5월-(3) 들불열사 김영철‧딸 김연우 씨]
박기순‧박관현 열사 등과 야학운동 주도
고문 후유증에 18년 간 정신병원 생활
“세상에 대한 미움 씻고 주체적 삶 살 것”
무용수로 활동 ‘나비연 예술단’ 곧 창단
19일 5‧18 포럼 ‘5월의 몸짓’ 창작 무대

들불야학 교사 김영철 열사 딸, 무용가 김연우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아빠가 목숨을 바쳐 지킨 자유로운 세상에서 저 또한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요.”

‘들불열사’ 고(故)김영철 열사의 딸인 무용가 김연우(42·북구 오치동)씨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인은 5·18 민주화운동을 앞장서서 이끌다 고초를 겪었고 그 때 얻은 후유증으로 운명할 때까지 18년 여생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투사로서 굽힐 줄 모르는 삶을 살았지만 연우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하기만 했던 ‘아빠’였다. 그 아픔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연우씨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고인 김영철은 박기순·박관현 열사 등과 함께 1978년 들불야학을 결성, 야학운동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피난민과 부랑자들이 모여 살던 광천 시민아파트에 거주하며 주민들의 주거생활 전반을 개선하는 지역공동체 운동을 이끌었다.

5·18 당시에는 시민학생투쟁위원회 기획실장을 맡아 항쟁의 선봉에 섰다. 정부와 언론의 흑색선전에 맞서 투사회보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포하고,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를 주도했다.

5월 27일 계엄군에 맞서 카빈 총을 들고 새벽까지 도청을 사수했다. 눈 앞에서 윤상원 열사의 죽음을 목격했고, 자신도 계엄군의 총탄 7발의 파편이 양쪽 다리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계엄군에게 ‘간첩’으로 낙인찍힌 고인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거짓 자백, 말실수를 하게 될까 고인은 28일 새벽 영창 화장실에서 벽 모서리에 머리를 10여차례 찧으며 자살을 기도했으나 헌병들에 저지당했다.

군법회의 1심에서 12년, 2심에서 7년형을 선고받은 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자랑스런 민주시민 광주시민 만세”를 외쳤다. 대법원 판결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투옥됐으며 이듬해 12월 성탄절 특사로 출소했다.

하지만 고인은 여생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자살 기도와 고문 여파로 오른쪽 뇌에 뇌수종이 생겨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던 것이다. 나주 정신병원, 영광 신하기독병원, 조선대 병원을 오가며 16년 동안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1998년 조선대병원에서 영면했다.

연우씨는 아버지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1980년 7월에 태어났다.

연우씨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픈 모습’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면회나 외박을 나왔을 때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연우씨는 “아버지는 가족 앞에서는 절대 아픈 티를 내지 않으셨다. 늘 웃고, 노래하고, 율동하는 제 모습에 장단 맞춰 박수를 쳐 주시는 따뜻한 아버지였다”며 “방 안에 혼자 계실 때는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하느님,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며 소리 죽여 울고 계셨다”고 떠올렸다.

연우씨는 사춘기 무렵 아버지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됐다. 학교에서 ‘너희 아빠는 정신병자’라며 놀림받아 울기도 하고, 아픈 내색 없이 마냥 사람 좋게 웃는 아버지에게 투정도 부렸다. 아버지를 아프게 한 군인들이,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이웃들이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사람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미움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해야 된다’고 하셨죠. 어릴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차츰 그 뜻을 알게 됐어요. 제가 평생 미움을 갖고, 피해 의식 속에서 살까봐 걱정해 주셨던 게 아닐까 깨닫게 된거죠.”

연우씨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 대한 미움을 씻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춤’을 추며 살기로 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굴레에 갇혀서, 피해의식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버지와 세상에 감사함을 느끼고, 또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우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용학원을 다니고, 광주여고와 광주여대 무용과를 졸업해 어엿한 무용가로 성장했다. 현재는 풍물연희예술단 ‘광대’ 전통무용 지도위원을 맡고 있으며, 나비연 문화예술단을 창단할 예정이다.

아버지가 국가의 압제에 맞섰듯, 연우씨의 예술 활동에서도 세상이 정해 놓은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연우씨는 형식상의 제한 없이 순간 순간의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몸짓 예술’을 창작하고자 한다.

연우씨는 “지금의 무용은 정해진 형식과 순서에 매여있어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힘들다”며 “관객들 또한 무용을 어렵게 해석하지 않고, 자유로운 몸짓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하나가 되는 무대를 꿈꾼다”고 눈을 반짝였다.

연우씨는 오는 19일 광주시 남구 송하동 효천역 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5·18 송암동·효천역 일원 양민학살 희생 영령 추모 문화제’에서 창작 무용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신이 해석한 1980년 5월의 모습을 ‘몸짓 예술’로 보여줄 계획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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