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는 돈이다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2년 04월 28일(목) 02:00
미국 뉴욕에 최근 초고층 아파트인 스타인웨이 타워가 들어섰다. 높이가 최고 82층 무려 435m에 달하지만, 건물 폭은 18m에 불과하다. 건물 너비 대 높이 비율이 1대 24인데, 마치 연필 하나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연필 밑에는 98년 된 낡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왜 이런 방식으로 건축된 것일까. 먼저 스타인웨이 타워가 있던 자리에는 명품 피아노 제조업체 스타인웨이 앤 선스가 1925년에 지은 ‘스타인웨이 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 2001년 랜드마크로 지정됐으며, 개발자 마음대로 철거가 불가능했다. 뉴욕은 기념 건축물 보존위원회가 있는데, 역사성·장소성을 가진 건축물은 철거할 수 없고 예산 보조를 통해 내부 리모델링만 가능하다.

여기에 건축물 높이도 규제된다. 해당 부지의 경우 중심 상업 지역임에도 최대 212m까지만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건축주는 높은 용적률에도 주변 저층 건물의 공중권, 즉 건물을 더 높일 수 있는 권리를 무려 1616억 원에 사들여 지금의 높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높이’가 곧 ‘돈’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경우는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있는 상업 지역에만 적용된다.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미국 뉴욕에서도 이처럼 유서 깊은 건축물은 반드시 보존하고, 높이를 규제해 도시 경관을 유지하려고 한다. 유럽 도시의 경우 성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은 중세·근대 건축물을 보존하며 낮게 유지하는 대신 외곽 신도심은 높게 개발하고, 미국 도시는 중심 상업 지역이면서 수요가 있는 도심은 높게 지을 수 있게 하되 주거 지역은 적정한 밀도로 조성해 쾌적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광주를 비롯한 우리의 도시의 경우 모든 토지에 마치 선심 쓰듯 지나치게 높은 용적률을 부여하고, 그것도 부족해 각종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는 바람에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몽땅 밀어 버리는 재개발로 의미 있는 건축물도 하루아침에 폐기물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광주의 정체성에 맞는 건축물 높이 대책이 필요하다. 도시 내 건축물 평균 층수보다 더 높이 짓게 하는 것은 특혜임을 인식해야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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