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추억
2022년 04월 22일(금) 06:00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해태 타이거즈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낸 1994년에 필자는 운 좋게도 스포츠면을 편집했다. 그해 최대 관심사는 이종범의 타율.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서 팬들은 야구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신문 기사에 의존했고, 스포츠면의 인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광주일보는 매일 야구 기사 앞부분에 이종범의 타율을 새겨 넣으며 특별 관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종범 2안타 타율 4할 1푼 2리’. 많은 독자들이 신문이 배달되면 가장 먼저 스포츠면을 펼치고 이종범의 타율부터 확인했다고 한다.

이종범은 4월을 평범하게 출발했는데 5월과 6월에 4할, 7월엔 무려 5할을 쳤다. 그러나 8월에 그 유명한 ‘배탈 사건’이 있었고, 3경기 13타수 1안타로 그동안 쌓아 놓은 타율을 다 까먹었다. 9월 한화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3안타를 쳤지만 끝내 ‘꿈의 4할’은 이루지 못했다. 최종 타율은 3할 9푼 3리. 광주일보의 제목은 ‘아깝다 이종범’이었다.

이종범은 이듬해인 1995년 방위병으로 입대한다. 그리고 홈경기에만 출전이 가능한 KBO 규정에 따라 타이거즈가 타 지역으로 원정을 가면 홍보 업무를 위해 광주일보 편집국을 자주 찾았다. 슈퍼스타답지 않게 소탈한 성격인 그는 항상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신문 제작 과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갑자기 이종범에 대한 추억을 꺼낸 이유는 KIA 타이거즈 신인 김도영 선수 때문이다. 시범 경기에서 4할 3푼 2리의 맹타를 휘두르고 탄탄한 수비 그리고 홈런과 도루를 쏟아 내며 ‘제2의 이종범’이라는 찬사를 받더니, 시즌이 시작된 이후에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종범도 데뷔 첫 해 4월엔 타율이 2할을 겨우 넘기는 정도로 부진했는데, 선배 선수들의 “눈치 보지 말라. 느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조언을 듣고 난 후에야 타격감을 찾았다고 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28년 전 편집했던 신문을 찾아 한 장 한 장 넘겨 본다. 퇴색한 종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도 이종범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유제관 편집담당 1국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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