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숫자
2022년 04월 20일(수) 01:00
그림 속에 숫자의 비밀이 숨어 있는 명작들이 더러 있다.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의 ‘씨름’에는 ‘마방진’(魔方陣·magic square)의 원리가 숨어 있다.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디든 합쳐도 숫자가 같은 매직 넘버다.

그림에는 씨름을 하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사방에 사람이 배치돼 있는데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 방향(↘) 대각선의 합이 8+2+2로 12이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방향(↙) 대각선의 합 역시 5+2+5로 12가 된다.

1년이 12개월, 하루가 밤과 낮 12시로 나뉘듯 당시 12라는 숫자는 완전체로 인식돼 있어 김홍도는 마방진 기법으로 이런 의미를 표현했다.

현대 화단의 가장 개성적인 화가인 천경자의 작품에도 숫자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우선 그녀의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부터 숫자가 등장한다. 작품 제목 속 숫자는 그녀의 나이를 나타내는데 자서전 제목과 같은 작품에서 따왔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1974년 홍대 교수직을 던지고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방문해 그린 것으로 코끼리, 기린, 사자, 얼룩말이 평화롭게 초원에 모여 있는 작품이다.

고단했던 젊은 시절을 끝내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막 시작하던 때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변화를 시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54세 천경자가 22세 때를 떠올리며 그린 자화상이다. 꽃을 든 여인이 정면을 응시하고 머리 위엔 뱀 네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뱀은 그녀가 낳은 2남 2녀를 상징한다.

천경자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광주에 와서 전남여고 교사 겸 조선대 강사로 활동하던 시점이 광주일보 창간 무렵이었다. 그녀는 전일미술관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고 호남예술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광주일보가 키운 이 나라 최고의 여류 화백이었다.

‘호남 문화예술의 산실’ 광주일보 창간 70주년을 맞아 새삼 그녀가 떠오른 이유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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