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할 권리’
2022년 04월 18일(월) 05:00
‘휘게’ ‘피카’ ‘허젤러헤이트’. 이 말들은 각각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어휘로 편안함, 휴식 그리고 아늑함을 뜻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자 한다. 호주 출신 작가 케이트 모건은 ‘20가지 행복 철학’이라는 책에서 세계를 누비며 배운 행복의 비법을 전한다. 모건이 예로 든 이탈리아의 ‘돌체 파 니엔테’(Dolce Far Niente)는 우리나라의 ‘멍 때리기’와 유사하다.

라틴어에 뿌리를 둔 ‘돌체 파 니엔테’는 세 어휘가 결합된 말이다. ‘Dulcis’(돌치스)는 ‘달콤한’, ‘Facere’(파체레)는 ‘하다’ 그리고 ‘Nec Entem’(넥 엔템)은 ‘존재가 아닌’으로 번역된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무위를 즐긴다는 의미다. 소렌토 해변을 비롯해 풍광이 뛰어난 곳이 많은 이탈리아에서는 멍을 때리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말 ‘푸리루프트슬리브’(friluftsliv)는 자유로운 야외 생활과 관련돼 있다. 1957년 개정된 야외 레크리에이션 법에는 ‘방랑할 권리’라는 이색적인 조항이 있다. 환경 보호를 전제로 누구나 자연에서 야영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한 것이다. 자연과의 교감은 스트레스로 지친 이들에게 회복 탄력성과 창의력을 선사한다.

바야흐로 하수상한 시절이다. 코로나에 물가 폭등, 권력 교체기와 맞물린 여야의 대결로 피로도가 높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형국이다. T.S.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여린 싹에 대한 애처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한 잔인함은 수사적인 기교로 치부할 수 있지만, 정치권의 사생결단식 다툼에서 기인하는 잔인함은 그 피해가 국민에게 전이된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유엔의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도는 59위였다. 국내총생산(GDP)이나 기대수명 수치는 높지만 행복 지수는 턱없이 낮다. 올해 4월도 ‘잔인한 달’로 기록될 것 같은 예감은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터다. 잠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방랑할 권리’를 누리는 것은 어떨까 싶다.

/박성천 문화부 부국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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