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과 간신
2022년 03월 20일(일) 23:20
우리나라 국보 가운데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이라는 공신록이 있다. 무려 길이가 24m에 달하는 이 문서는 조선시대 공신들의 충성 맹세를 담고 있다. 1680년(숙종 20년) 8월 30일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고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제작됐다. 회맹제는 개국공신을 비롯해 역대 20명의 공신과 그 자손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며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다.

조선의 역사는 출발부터 쿠데타의 역사였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요동 관할에 두겠다고 통보하면서 양국의 긴장이 고조됐다. 최영은 명나라를 징벌하기 위해 요동정벌을 추진했지만 이성계는 현실론을 들어 반대했다. 우왕의 지시로 이성계는 출정을 하지만 압록강 위화도에서 회군한다. 개경에 진입한 이성계는 이후 왕을 폐위하는 등 사실상 고려의 정권을 장악한다.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앞장섰던 이방원을 조명한 작품이다. 실권을 잡은 이방원은 외척 제거는 물론 ‘조선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마저 무참히 처형한다. 역성혁명으로 개국한 조선은 왕자의 난, 사화, 반정과 같은 무력 충돌과 변란을 낳았다. 권력의 부침은 역설적으로 공신의 남발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가 뉴스의 중심이 되면서 인수위원을 비롯한 핵심 측근(‘윤핵관’)의 언행도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일부 인사들이 쏟아내는 발언이 ‘점령군’처럼 비쳐진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과도한 간섭, 검찰총장 사퇴 압박 등의 행태는 오만하기 그지없다.

문화콘텐츠 창작자 이성주는 저서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에서 윤원형, 김자점, 한명회 등 간신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간신을 왕이 허락해 만들어진 내부의 적으로 본다. 사실 공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권력자를 바라보면 간신이고 국민을 바라보면 공신이다. 독일 금언에는 “군주가 과일 하나를 따면 그 수하들은 나무를 벤다”는 말이 있다. 혹여 윤 당선인 공신들이 0.7% 차이의 ‘참을 수 없는 승리의 가벼움’에 도취되어 ‘나무’까지 베려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박성천 문화부 부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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