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시작이다
2022년 03월 11일(금) 03:00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전장에서는 12월 24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암묵적 휴전 상태인 ‘크리스마스 정전’의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 서부전선에서 만난 영국군과 독일군은 총을 버리고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맨몸으로 겨뤘다. 상대 군영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에 잠시 전투를 멈추고 한바탕 축구 대결을 펼친 이날의 사건은 훗날 월드컵 축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스포츠는 전쟁 속에도 서로 다른 집단과 신뢰하며 차이를 초월해 교감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었다.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은 삶을 파괴한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은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퇴출시킨다. 전쟁과 폭력은 평화와 화합을 추구하는 스포츠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고, 유고슬라비아도 1991년 시작된 내전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퇴출됐다. 2018년 월드컵을 개최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러시아의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 참가를 불허했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카타르 월드컵 출전 금지 조치를 내렸다.

공을 두고 싸우는 스포츠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팬들에게 야구나 축구 등 프로스포츠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생활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지난 2년 간 코로나19로 모든 경기가 중단되거나 관중 없이 치러질 때 일상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상륙작전, 총대를 메다, 포문, 격전지, 입법 전쟁, 직격탄 등 전쟁과 관련된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상을 전쟁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을 전쟁(?)처럼 치르기도 한다. 정당과 후보, 지지자들이 하나 되어 당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운동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낸다. 이 과정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이 선거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 축구 대표팀의 전설적인 감독 제프 헤어베르거는 이런 말도 남겼다. “경기의 끝은 곧 경기의 시작이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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