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
2022년 02월 24일(목) 04:00
‘기록’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 있다. 오래전 읽은 ‘신인왕제색도: 빛으로 그리는’이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궁리출판사’ 이갑수 대표가 글을 쓰고 도진호 작가가 사진을 찍었다.

이 책에는 2009년 가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같은 자리’에서 찍은 인왕산의 모습과 사색이 담긴 글이 실려 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1751년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렸던, 겸재의 집터 인곡정사가 있던 곳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인왕산은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바위산의 매력을 한껏 보여 주는가 하면, 비 온 후 구름에 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헤어짐과 배웅’(Leaving and Waving) 전시회를 열었던 미국 사진작가 디에나 다이크만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부모님 집에 갔다가 떠나올 때마다 배웅해 주는 부모님을 1991년부터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포즈로 손을 흔드는 부모님을 27년간 기록한 것이다. 점점 변해 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의 사진에 오롯이 담겼는데, 얼굴의 주름은 깊어지고 몸은 점점 쇠약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 속엔 어머니 혼자만 등장한다. 마지막 사진은 ‘손 흔드는 이 없는’ 텅 빈 차고(車庫) 모습이었다.

‘비포 선 셋’의 리처드 링클레어 작품 ‘보이후드’(Booyhood)는 여섯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주인공 메이슨의 삶을 따라가며 소년의 성장기를 보여 준다. 감독은 여섯 살 소년을 캐스팅했고, 배우들은 12년간 매년 일주일 정도 만나 촬영했다.

오는 3월6일까지 광주양림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옥열 사진전 ‘흔한 날들의 특별한 기록, 10년의 아침’은 ‘순간’과 ‘추억’을 저장하는 ‘기록’의 의미를 잘 보여 준다. 10여 년 전 광주시 북구 운암동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작가는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무등산과 아침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휴대전화와 시진기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계속된 그의 앵글 속엔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하늘, 수줍게 얼굴을 내민 새벽달,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습 등이 담겼다.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나만의 무엇’을 하나쯤 기록해 나가도 좋을 듯하다. /김미은 문화부장mekim@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