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보복
2022년 02월 16일(수) 05:00
20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막이 올랐다. 박빙의 승부가 예견되는 만큼 대선 결과를 어느 누구도 쉽게 점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수사’ 발언으로 여권이 발끈하는 등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적폐 수사’는 사실상 현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인사들이 많다. 30대 이상의 상당수 국민도 ‘정치 보복’으로 인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민 통합’을 외쳐 온 대선 후보가 직접 ‘적폐 수사’를 언급해 국론 분열 단초를 제공한 것은 최고의 실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 보복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후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용서했던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복권은 앞으로 더 이상의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내 염원을 담은 상징적인 조치였다”고 회고했다.

며칠 전 염수정 추기경은 윤 후보와 환담한 자리에서 “보복으로 시작하면 보복으로 끝난다”라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인 것으로 해석된다. 비리가 있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특수통 검사’ 윤 후보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윤 후보는 이제 검사가 아닌 일국의 대통령 후보다. 다행히 뒤늦게 “시스템에 따라 잘못된 게 있으면 원칙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더 이상 ‘정치 보복’으로 인한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야 대선 후보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냈던 ‘국민 통합’ 여부에 달려 있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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